공무원 예약 뚝…살얼음 식당가

 

천당과 지옥의 경계(境界)라고 하면 과장일까. 몰려드는 손님들로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할 요식업소들이 하나같이 울상이다. 내일의 괴로움이 예고된 오늘의 즐거움이 달가울리 만무하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손님들의 표정도 밝지 않다. 내일에 대해 잔뜩 경계(警戒)하는 눈치다. 그러면서 왜 우리가 이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냐고 반문한다. 김영란법(청탁금지법) 시행을 하루 앞둔 27일 대전 도심 점심시간의 표정이다.

28일부터 김영란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왠만한 법전 분량의‘김영란법 사용설명서’가 김영란법 사정권을 겨냥하면서 그 대상은 물론‘유탄(榴彈)받이’를 우려하는 관련업계는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을 토로한다.

법 시행을 하루 앞둔 이날은 제법 손님들로 북적였다. 예약판을 가득채운 식당도 적잖았다. 거기까지다. 한 식당 사장은 “오늘은 빈 자리가 없다. 그러나 내일부터가 걱정”이라고 푸념했다. 이 식당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식사는 3만 원으로 제한돼 있으나 워낙 변수가 많아 내일부터는 아예 당분간 구내 식당을 이용하려고 한다. 오늘 점심은 성대한 만찬”이라고 우스갯소리섞어 말했다.

관가에서는 28일부터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약속을 잡지 않는 분위기다. 평상 시 빽빽했던 식사 일정은 백지상태라는 후문이다. 특히 술이 곁들여지는 만찬의 경우 생각지 않는다고 한다. 김영란법의 규정이 명확하지 않기에 애초부터 논란을 피하겠다는 의중이 엿보인다. 공무원 사회는 김영란법의 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국회 통과 때부터 제기된 김영란법의 불명확성 문제에 대해선 볼멘소리도 나왔다. 이로인해 ‘아예 약속을 잡지않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공직 사회 등이 극도로 몸을 사리면서 그 여파는 고스란히 주변 식당가로 미쳤다. 특히 평소 공무원들을 주요 손님으로 받던 고급식당들이 직격탄을 받고 있다. 둔산동에서 복·아구집을 운영하는 A(56·여) 사장은 “시청, 서구청 주변이라 특히 공직자 분들이 많이 왔는데 이제는 손님들이 금액에 신경 써서 먹어야 하니 다들 밖에서 먹지 않으려고 든다. 공직에 종사하는 손님들이 많다보니 여름철에는 휴가 가서 걱정이고, 연휴에는 사람이 걱정인데 이제는 김영란 법이 걱정이다”며 “시에서 아무리 지역 상권을 살리는 정책을 펼친 다해도 정부에서 밥상을 엎는 형국이다. 이제는 너도나도 ‘김영란 메뉴’를 내놓는 방법밖에 없다”고 허탈해 했다. 이 식당은 최근 주류를 포함해 2만 9000원 짜리 김영란 세트 메뉴를 내놨다.

검찰청 주변에서 한정식을 운영하는 B 모 사장은 “검찰청 앞에 있는 식당이지만 검사들이 거의 찾지 않는다. 법 시행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것 같다”고 귀띔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28일을 기점으로 예약이 ‘가뭄에 콩 나듯’ 하며 관련업계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한 횟집 사장은 “내일 시행될 김영란법 때문인지 공직자 예약 손님을 한 건도 없다”고 했고 또 다른 횟집 사장은 “통상상적으로 저녁의 경우 1인당 2만 5000원 대 회정식을 많이 먹는데 공무원 예약은 거의 없다”고 했다. 한 전복집 사장은 예약 손님이 확 줄면서 들여오는 전복량을 대폭 줄였다며 김영란법을 나무랐다.

곽진성 기자 pen@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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