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했던 골목에서 찾은 희미한 기억들

 

“우리가 사는 공간과 그 위에 펼쳐진 삶을 기록하는 작업은 그것이 어디든 누구든 소중합니다. 공간은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쌓여가는 것이기 때문이죠.”

대전에서 일어나는 주거공간의 소멸과 탄생, 쇠락과 번성은 전국 어느 도시에서나 흡사하게 발견되는 패턴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자기가 살던 익숙한 골목이나 집, 소소한 풍경들이 개발로 인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경험을 한 번 정도는 했을 것이고, 소비재로 전락해 버린 공간은 개성과 정겨움을 잃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도시에도 다양한 형태의 주거공간들이 공존하고 있다. 허름해 보여도 오랜 시간이 쌓여 정겨운 공간들이 남아있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익숙했던 골목이 개발로 사라지거나, 의미를 지닌 건물이 자본의 논리로 그 본모습을 잃어버리거나, 혹은 마을의 역사를 기억하는 이들을 점차 찾기 어려워지는 세태에 ‘기록’이란 존재를 되살려 내는 유일한 방책이다.
 

‘대전여지도(大田輿地圖)’의 저자 이용원은 2007년 문화예술잡지 ‘월간 토마토’를 창간한 뒤 자본의 때가 묻은 도시 곳곳의 희미해진 마을을 찾아다녔다. 이 책은 여행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문적인 지리서도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살이의 최소 주거단위인 ‘마을’이라는 정겨운 무형의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골목, 저 골목 헤매다가 맞닥뜨린 우연한 풍경이 소소하게 말을 건다. 그것은 획일화와 반대되는 ‘다름’과의 만남이다. 예상 밖의 풍경, 이 집과 저 집, 이 골목과 저 골목은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매순간 흥미롭다. 그런 발견의 과정이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이는 길과 집으로 이뤄진 마을이란 이름의 삶을 그리는 과정과 같다.

이용원의 문장은 그런 골목길과 꼭 닮아 있다. 절제되고 무심한 듯한 문장 속에 따뜻함이 공존한다. 길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모든 것이 글의 대상이 된다. 마을 경로당을 지키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의 느른한 시선이 있는가 하면, 골목에서 바라본 쨍한 푸른 하늘이 있고, 개발로 순식간에 파헤쳐지는 오랜 삶터에 대한 애착이 있다. 매끄럽게, 때론 투박하게 그 길을 떠도는 건 그의 발이 아니라 그의 문장이다.
 

대전여지도 시리즈는 10년을 이어온 야심찬 기획이다. 도시 개발 심화로 나날이 사라지는 토박이 문화와 지역 고유의 공간, 그 안에 둥지를 튼 사람의 모습을 기록하고, 마땅히 보존해야 할 것에 힘을 싣는 작업이기도 하다.

‘대전여지도1’은 대전역과 옛 충남도청을 중심으로 한 원도심이 자리한 대전의 시작점 ‘중구’를 다뤘다. 제1부 ‘골목에서 만나다’에선 대사동·옥계동·호동·부사동·문화동의 정겨운 골목 풍경을 만날 수 있고, 제2부 ‘산자락에 기댄 마을’은 안영동·금동·무수동의 자연마을을 담았다. 3부 ‘원도심의 기억’에서는 대흥동·선화동·은행동에 숨어있는 과거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29일 오후 7시 30분 중구 대흥동 북카페 이데에서 ‘대전여지도1’ 출간을 기념한 북콘서트가 열려 지역 밴드 ‘개인플레이’의 공연과 저자의 대전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최 일 기자 choil@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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