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진영 반전카드로 潘 활용 시나리오 나돌아

1987년 전두환 대통령의 4·13 호헌(護憲) 조치에 분노한 민심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고, 전두환의 후계자로 지목된 노태우는 6·29 선언을 전격 발표했다. 보수 진영은 극적인 반전을 이뤄 위기에서 벗어났고, 그해 치러진 13대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줬다. 직선제를 수용한 노태우는 민주주의의 새 전기를 마련한 통 큰 정치인으로 부각됐고, 대선 정국에 군사정권의 이미지를 불식시키며 ‘보통사람’이란 구호를 내걸어,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며 분열된 야권의 김영삼·김대중의 거센 추격을 뿌리쳤다.

하지만 훗날 6·29 선언은 전두환과 노태우의 합작품임이 드러났다. 정국 반전을 위한 잘 짜인 시나리오로 정권을 야당에 빼앗기지 않고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런데 6월 항쟁으로 기억되는 87년의 드라마 같은 상황이 30년 만인 내년에 재현될 것이란 설이 정치권에 나돌고 있어 주목된다. 87년의 주인공이 ‘전두환’과 ‘노태우’라면 2017년은 ‘박근혜’와 ‘반기문’으로 대치되는 형국이다.

우선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로 연일 하야·퇴진 압력을 받고, 국회에서의 탄핵 소추가 추진될 것으로 보이는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본인의 사퇴시한으로 삼은 12월 21일 이후 며칠 새 하야할 것이란 게 시나리오의 첫 단추다.

이 대표가 12월 21일을 사퇴시한으로 잡은 것도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크리스마스 휴가 일정과 맞춘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국민들의 퇴진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청와대에서 선택할 수 있는 수순은 반 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뒤 박 대통령이 반 총장의 ‘설득’으로 자진 사퇴하는 모양새를 띠어 탄핵 정국을 대선 정국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란 게 이를 뒷받침한다.

박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나면 헌법에 따라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고, 60일 이내에 대선이 치러지는데, 대통령을 자진 사퇴시킨 반 총장은 87년의 노태우처럼 영웅으로 떠올라 대권을 잡고, 지리멸렬하게 지지고 볶으며 분열된 야권은 87년처럼 패배의 아픔을 맛보게 된다는 게 이 시나리오의 결말이다.

한편의 소설 같은 얘기이지만 전혀 현 정국과 무관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얼마든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다. 반 총장의 정치적 선택에 더욱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올해 말로 10년간의 UN 사무총장 임기(연임)를 마무리하는 반 총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1월 1일이 되면 나와 내 가족, 조국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퇴임 후 조국을 위해 일할 최선의 방법을 고민하겠다”라며 사실상 대권 도전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최근 대한민국의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 “한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깊이 우려를 하면서 상황을 면밀히 지켜봐 왔다”라며 “한국에서 일어난 일에 사람들이 좌절감을 느끼고 몹시 화가 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100만 촛불민심에 아랑곳없이 버티며 검찰과 각을 세우고 시간을 끄는 이유가 과연 반 총장과 연계된 ‘큰 그림’에 따른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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