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대 교수

아득한 구름 가에 슘어 발근 달 아니면

희미헌 안개 속에 반만 녈닌 꼿치로다

지금에 화용월태는 너를 본가 하노라

-‘금옥총부’ 47

아득한 구름 끝에 숨어 있어 밝은 달이 아니면 어찌 볼 수 있겠느냐. 희미한 안개 속에 반쯤 피어 있는 꽃이구나. 지금에 꽃 같은 얼굴 달 같은 모습, 너를 보았는가 하노라. 그녀를 화용월태라 칭찬했다.

어느날 안민영이 평양 모란봉에 올라 꽃구경을 하고 있었다. 멀리서 기생 혜란과 소홍이 꽃을 밟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이에 시조를 한 수 읊었다.

낙화방초로(洛花芳草路)의 깁 치마를 끄럿시니

풍전(風前)에 나난 꼿치 옥협(玉頰)에 부듯친다

앗갑다 쓸어올지연정 밥든 마라 하노라

-‘금옥총부’ 70

꽃잎이 떨어지는 싱그러운 풀 무성한 길가. 비단치마 쓸리듯 오니 바람에 흩날리는 꽃이 예쁜 뺨에 부딪히는구나. 아깝다. 쓸어서 담아 올지라도 밟지는 말아라. 일찍 눈을 찍어 둔 모양이다.

평양에 있을 때 안민영은 혜란에게 정을 주었다.

병풍에 그린 매화 달 업스면 무엇하리

병간매월(屛間梅月) 양상의(兩相宜)는 매불표영(梅不飄零) 월불휴(月不虧)라

지금예 매불표영 월불휴허니 그를 조히 너기노라

-‘금옥총부’ 159

병풍에 매화, 달이 없으면 무엇하겠는가. 병풍 사이 매화와 달이 서로 어울리는 것은 매화는 바람이 불어도 떨어지지 아니하고 달은 시간이 흘러도 이지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매화가 바람이 불어도 떨어지지 아니하고 달이 시간이 흘러도 이지러지지 아니하니 그것이 좋다는 것이다. 오래도록 너와 함께 어울리고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을 병풍의 매화와 달에 비유해 노래했다.

세상도 세월처럼 흐르는 법. 안민영은 오래 머물 수 없는 몸이다. 이제 그녀 곁을 떠나야 한다.

님 이별 하올 져귀 져는 나귀 한치 마소

가노라 돌쳐 셜제 저난 거름 안이런덜

꼿 아래 눈물 젹신 얼골을 엇지 자세이 보리요

-‘금옥총부’ 119

님과 이별할 때 다리 저는 나귀를 원망치 마라. 가겠다고 돌아설 때 쩔뚝이는 걸음이 아니었던들 꽃 아래 눈물 짓는 얼굴을 어찌 자세히 볼 수 있겠는가.

혜란은 고종(1863~1907) 때의 평양 기생이다. 안민영은 ‘금옥총부’(金玉叢部·1885) 119에 그녀와의 이별을 이렇게 소개했다.

평양의 혜란은 색태가 뛰어난 것만이 아니라 난을 잘 치고, 노래와 거문고를 잘해 성 내에 소문이 자자했다. 내가 연호 박사준과 농막에 거처할 때 일이 있어 평양에 갔었다. 혜란과 더불어 7개월 동안 서로 따르며 정의로 사귐이 밀접해서 작별에 즈음에 미쳐 혜란은 나를 장림의 북쪽에까지 와서 송별하였다. 떠나고 머무르는 슬픔이 과연 스스로 억제하기 어려움뿐이더라 (황충기, 고전문학에 나타난 기생시조와 한시)

눈이 아플 것 같이 아름다운 혜란. 그녀도 난의 이름처럼 그리 아름다웠나보다. 7개월 동안 정이 담뿍 들었으니 어찌 저는 다리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리까지 저니 이별의 정한은 이리도 서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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