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이 계룡산 시대의 사명인 모두가 고루 잘 살 수 있고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원하는 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까? 풍수지리적 관점인 음양오행의 지세에 의해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특성에 따라 성장 발전하고 있지만 미래 도시에 대한 청사진은 밝은 측면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함께 모아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명품 도시로 거듭나야만 한다.

대전은 오행의 특성과 함께 순차적인 발전 양상을 가져왔다. 시작을 알리는 목(木)의 기운인 동쪽에 19세기 후반 공주의 작은 마을 한밭인 대전리에 경부선 대전역이 세워졌다. 식장산의 기운이 대동천과 대전천이 만나서 명당을 이룬 지역이다. 정동과 원동, 인동, 중동을 중심으로 교통이 발달되면서 급격히 부상하게 된다. 일설에 의하면 대전역의 출현은 당시 인근의 큰 도시인 청주와 공주에서 각각 철도 역사를 반대해 어쩔 수 없이 중간 지점에 역사를 설치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 철도의 중요성과 미래를 알지 못한 청주와 공주보다는 어부지리로 설치된 대전역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계기가 됐다.

그 후 20세기 초반인 1932년 공주에 있던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함으로 대흥동, 은행동, 선화동, 용두동, 유천동 등을 중심으로 중구 경제문화권이 형성돼 발전하게 된다. 남쪽의 보문산의 기운이 대전천, 유등천과 만나면서 명당을 이룬 지역이다. 동쪽인 목(木)에서 화(火)의 기운인 남쪽으로 성장축이 변화됨을 알 수 있다. 이를 목생화(木生火)라 하며 목이 화를 키워준다고 한다. 동쪽의 대전 역세권이 남쪽의 중구 도청권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여기까지의 대전은 풍수상 오행의 지세를 완전히 갖추지 못해 평범한 도시에 불과했다. 20세기 후반인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 대덕연구단지가 세워지고 1983년 계룡산 정기를 받은 유성읍과 회덕, 구즉, 탄동 지역이 대전으로 편입돼 오행의 지세를 갖추게 됐다. 비로소 계룡산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 후 1991년도 둔산신도시가 대전의 가운데인 토(土)의 지세인 중앙지점에 조성됐다. 이는 장태산의 기운이 갈마동 월평공원을 지나 둔산지역에 이르고 유등천과 갑천이 만나서 명당을 이루었다. 이를 화생토(火生土)라 하며 화가 토를 도와주게 된다는 의미다. 남쪽의 기운이 중앙으로 이동하게 됨을 뜻하며 실제적으로도 도시의 기능이 둔산지역으로 발전하게 됐다. 이로써 대전 역세권과 중구의 경제문화권이 둔산신도시 행정권으로 도시의 성장축이 자연스럽게 변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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