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질설 위기 아스널 벵거 감독, 이 남자가 사는 법

아버지들은 외롭다. 가족을 위해 책임져야할 것들도 참 많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아버지의 소주 한 잔에는 눈물이 반이라 했던 거다.

이번 주 '축덕살롱'에서는 경질 위기에 놓인 '외로운 남자' 아스널의 가장 아르센 벵거(68)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부임 21주년을 맞은 아스널 벵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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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병부대의 빅보스' 벵거, 집중포화를 맞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21년간 아스널을 이끈 감독이자, '거너스의 아버지' 아르센 벵거.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함께 EPL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령탑을 맡고 있는 최장수 감독 중에 한 명이다.

그런데 최근 그가 감독 커리어에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바로 '경질설'이다. 이번엔 심상치가 않다. 발단은 이랬다.

 

벵거 아웃을 외치는 아스널 팬들

주중 벵거 감독은 아스널을 이끌고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독일 원정길에 올랐다. 이번에도 상대는 바이에른 뮌헨이였다. 예상대로? 결과는 초라했다.

경기 시작 11분만에 로번에 선제골을 허용하더니 후반 8분 레반도프스키에게 추가골, 3분 뒤 티아고 알칸타라에게 세 번째 골을, 후반 17분에는 또 다시 알칸타라에게 네 번째 골을 헌납했다.

후반 종료 직전엔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던 토마스 뮐러에게 마저 골문을 내줬다. 아스널은 전반 30분 알렉시스 산체스가 기록한 득점이 유일했다.

그렇게 아스널은 1-5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7년 연속 '챔스 16강 잔혹사'위기가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였다.

원정 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언론들은 "벵거의 시대는 끝났다"며 포화를 쏟아부었다. 지난 1996년 9월 아스널 부임 이후 어느덧 21주년을 맞은 벵거 감독은 잔류를 확신할 수 없는 분위기다.

 

 

젊은 시절의 벵거

 

#. 골키퍼 벵거, 교수님이 되다

영국인으로부터 원성과 사랑을 동시에 받고 있는 프랑스 출신 감독이자 최고의 명장 중 하나로 불리는 '아스널의 보스' 아르센 벵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출신인 그는 선수시절 대부분을 아마추어 리그에서 보냈다. 193센티미터의 큰 키 덕분에 골키퍼로 축구를 시작했다. 이후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한 그는 스물 아홉이 되어서야 고향 연고지팀인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1부리그 프로 데뷔를 한다.

그러나 선수로서의 특별한 재능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이른 나이 현역 은퇴를 선언한다. 이후 지도자 수업에 올인하며 명문 스트라스부르 대학에 입학, 경제학 석사, 명예박사 학위까지 취득하며 고향 연고지 스트라스부르의 유스팀을 지도하게 된다.

낭시 로렌으로 옮겨 꾸준히 지도자 커리어를 쌓아오던 그는 1987년 감독으로서 첫 번째 전환기를 맞게 된다.

그는 87년 프랑스 명문클럽 AS 모나코(국내 축구팬들에게도 익숙한 박주영의 팀 2008.09~2011.08) 에서 러브콜을 받게 돼고 부임 첫 해 리그앙 우승컵을 들어 올린다. 거기에 프랑스 올해의 감독상까지 수상한다.

아울러 벵거는 어린 재능들을 발굴하는데도 성과를 내며 티에리 앙리, 튀랑, 프티와 같은 슈퍼 탤런트들을 발굴하기도 했다.

그런던중 94년 프랑스 1부리그 리그앙에서는 승부조작 논란이 리그 전체를 강타했고 어수선해진 분위기는 모나코에게도 예외는 아니였다. 승승장구 하던 모나코는 리그 9위까지 곤두박질 쳤고 벵거는 경질 당하고 만다.

이후 벵거는 바이에른 뮌헨 등 유럽 명문 클럽들의 오퍼를 거절하고 95년 막 출범한 일본 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1996년 9월 뷰티풀 사커 '벵거볼'의 서막

96년 영국 런던. 팀의 전면적인 개혁을 고려하던 아스널 보드진은 일본 J리그에서 승승장구하던 벵거에 주목한다. 당시 아스널의 부회장 데이비드 데인은 벵거의 영입을 강력히 주장한다.

결국 벵거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런던을 연고지로 하는 아스널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아스널의 첫 번째 외국인 감독이 되는 순간이였다.

하지만 그의 아스널에서의 첫 시작은 녹록지 못했다. 현지 언론들은 "아르센? 이 듣보 누구냐" ("ARSENE WHO?")며 조롱하기 시작했다.

벵거는 프랑스인, 일본 J리그 출신 등 편견에 맞서며 조용한 개혁을 시작한다.

"단 5분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아름다운 축구를 하고 싶다"던 그는 그동안 구상해온 철학을 바탕으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을 도입한다.

도전은 성공적이였다. 부임 첫 시즌인 96~97시즌 리그 3위, 01~02시즌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더블'을 기록했다.

 

 

프리미어리그 더블을 기록한 벵거

 

#. 질줄 모르는 아스널, EPL 최초 '무패우승' 달성

03~04 시즌은 아스널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아스널은 EPL 출범 이후 최초로 26승 12무 '무패' 라는 엄청난 성적을 기록하며 무패 우승을 달성한다.

 

무패 우승 당시 03-04 시즌 리그 순위표

 

1년 동안 단 한번도 패배가 없었다. 이 기록은 1992년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한 이래 최초이며, 프리미어 모태인 잉글랜드 프로축구리그에서 1888~1889년 시즌 프리스턴노스엔드가 기록한 이후 115년만에 나온 대기록이다.

벵거 감독의 노력이 결실로 이루어진 거다. 벵거 감독은 일본 나고야에서 경험한 웰빙 식단과 새롭게 도입한 트레이닝 기술 등 다른 시각의 접근 방식은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앙리, 벵거를 만나다

이 과정에서 데니스 베르캄프, 티에리 앙리 같은 선수들은 팀을 최정상의 자리로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03~04 시즌에 무패 우승을 차지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인복까지 많았던 벵거였다.

그러나 04~05시즌 FA컵 우승 이후론 리그에서 단 한 번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하며 9년 동안 무관의 수모를 겪게 된다.

06~07시즌엔 일명 '황금의 4중주'라 불리는 막강 스쿼드를 구축하며 리그 우승을 노렸지만 시즌 막판 미끄러진다. 그 이후로도 벵거는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줬지만 선수들의 잦은 부상으로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했다.

03~04 무패 우승으로부터 10년... 13~14시즌엔 가까스로 FA컵 정상에 오르며 연속의 무관을 끝냈다.또 그 다음시즌 커뮤니티 실드와 FA컵을 다시 우승하며 체면 치레를 한다.

 

 

#. 4위, 16강에 만족? 목표를 잃어버린 벵거

결국 벵거는 우승이 목표가 아닌 구단의 큰 수익원 중 하나인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목표로 팀을 운영한다.

리그 4위만 유지해도 챔스 티켓은 쥐어지고, 유럽 클럽 대항전에 나가는 팀으로서 클래스 있는 매물도 쉽게 영입 수 있으니 말이다.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벵거 감독에게 이보다 더 남는 장사는 없는가 보다"

전 세계 모든 축구클럽 중에서도 가장 고가의 티켓값을 지불하고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찾는 아스널 팬들은 더이상 우승을 목표로 하지 않는 클럽의 방침에 분노하며 '벵거 아웃' 을 외치게 된다.

팬들은 아스널의 거의 모든 부분에 관여하는 벵거의 권한 문제에도 날선 비판을 가한다. 감독과 프런트의 이원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바꿔말하면 벵거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말이기도 하다.

 

 

#. 그래도... 벵거 외엔 마땅한 대안 없잖아?

마냥 4위, 오랜기간 동안 리그 타이틀을 따내지 못했고 매 시즌 나가는 챔피언스리그에선 우승컵 하나 들어 올리지 못했다.

'4이언스 과학자'라고 무시받는 아르센 벵거. 그러나 정말 힘든 팀을 버리지 않고, 수 많은 비난 속에서도 팀을 위해 노력한 명장 아르센 벵거.

벵거, 아스널에서의 21주년에 즈음하여 그의 업적을 되돌아 보고 '리스펙' 해보는 건 어떨까.

15개의 트로피와 6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건축, 꾸준히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며 팀의 위상을 유지한 업적들 말이다.

그의 나이 일흔이 되기전에, 팬들과 함께 리그 우승의 기쁨을 누리고 은퇴하는 유종의 미를 거두는 날을 기대해 본다.

노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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