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관섭 배재대 비서팀장·전 대전일보 기자

주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의외로 무언가를 모으는 경우가 많다. 40대 중반의 한 후배는 영화포스터에 빠져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놓기 위해 인터넷 전문 블로그를 뒤지기 바쁘다. 한 선배는 카메라에 매료되어 있다. 손때가 묻은 아주 오래된 카메라도 명품이라면 꼭 소유해야 직성이 풀릴 정도다. 외국을 나갈 때면 반드시 벼룩시장을 들러 중고 카메라를 둘러보곤 한다. 또 다른 선배는 축음기와 스피커에 심취해 있다. 아날로그적인 것부터 고가의 최첨단 스피커까지 소유욕이 가히 놀랄 정도다. 이들은 보통 무취미가 취미라고 말하면서도 관심사에 대해서는 깜짝 놀랄 정도의 해박한 지식을 풀어놓는다. 수십 년 동안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쌓인 내공의 깊이는 일반적인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다. 또한 수집한 대상과 관련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할 때의 모습은 행복하기 그지없다.

오랫동안 수집행위가 직업이 되거나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 경우도 많다. 대전에서 한 화랑을 운영하는 동갑내기 관장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샐러리맨으로 작품을 모으다가 과감히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대전에 화랑을 차렸다. 대전에서 갤러리 운영은 곧 망하는 길을 선택했다고 할 정도로 척박한 환경이지만 유명작가의 기획전을 유치하고 지역의 유망작가를 발굴하면서 관련 사이트를 개설하는 등 나름대로 탄탄한 기반을 다져가고 있다. 검사출신 필적학자로 유명한 구본진 변호사도 빼놓을 수 없다. 범죄자들의 자술서를 들여다보다가 필적학에 관심 갖게 되어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를 수집하고 분석하면서 이 분야의 독보적인 반열에 올랐다. 명지전문대 백성현 교수는 30여 년간 전 세계 120개국의 식당 메뉴판 3000여 개를 모으다가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늦은 나이에 교수가 됐다. 백 교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물건일수록 수집품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신념으로 모았다고 한다. 대를 이어 수집벽에 빠져든 사람도 있다. 판화가로 유명한 이항성 화백의 아들 이승일 전 홍익대 교수는 직업은 물론 ‘조선시대 판화 모으기’라는 아버지의 취미도 물려받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빅뱅의 탑도 유명하다. 수입의 95%를 미술작품 구입에 쓰고 있다는 탑은 지난해 홍콩에서 열린 소더비의 특별경매에 큐레이터로 참가하기도 했다.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수집하다 보면 대상에 대한 심미안이 생기게 마련이다. 흔히 수석을 모으는 사람들은 초기 탐석에서는 배낭이 무거워 들지도 못할 정도로 줍는다고 한다. 하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빈 배낭으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미술평론가 유홍준 교수가 최근에 발간한 ‘안목(眼目)’에는 우리 옛 미술의 가치를 발견하고 더 발전할 수 있게 해 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소개되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평론가라고 할 수 있는 남태응은 ‘청죽화사’‘에서 신품(神品), 법품(法品), 묘품(妙品)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구분했다. 또 추사 김정희는 서화 감상에는 “금강안(金剛眼)과 혹리수(酷吏手)”가 있어야 한다“며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감상이란 것은 개인적인 차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눈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은 작품을 생산해내는 창작자가 많아져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안목을 기르는 방법은 발품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낳았더라도 공부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발전이 없듯이 관심 있는 대상을 정해 꾸준히 찾아 탐색해 나갈 때 본인의 삶은 물론 주변가지 풍요롭게 한다. 갈수록 각박해져가는 세상, 자신만의 수집 대상을 정해 하나씩 모아가며 그 속에서 기쁨을 찾아간다면 그리 빡빡하지마는 않을 듯싶다. 꽃구경도 좋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찾아 구경하는 재미 또한 어느 것 못지않게 쏠쏠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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