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축골 작약꽃밭 - 대전 동구 신촌동 (5구간)

 

#. 작약꽃, 그 아름다움이여

발그레 홍조 띤 수줍은 호반
여기저기 향긋한 봄내음 그윽
벌, 나비 모두 불러 꽃잔치

 

 

3200년 전 미케네는 전쟁을 통해 발칸반도를 하나의 강력한 국가로 완성했다. 당시 발칸반도 주변의 국가는 강력한 미케네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멸망으로 가는 길이란 걸 알았을 정도로 당시 미케네는 군사력은 물론 모든 분야에서 최강을 자랑했다.

아가멤논을 축하하기 위해 인근의 트로이는 왕자인 파리스를 그리스로 보냈고 파리스는 아가멤논의 아내 헬레네를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다.

결국 그녀를 자신의 나라로 데리고 가버린다. 아가멤논은 이에 격분해 군사를 일으켜 트로이로 창끝을 겨눴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3월이 봄이 옴을 알리는 시기라면 4월은 봄이 전성기를 갖는 시기고 5월은 짧고 짧은 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기다. 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봄꽃도 그렇게 화려했다.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고 그 아름다움을 뺏기 위해 미케네로 간 파리스처럼 대청호로 향한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계절의 여왕도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르고 그 자리를 더위에게 물려줄 준비를 마쳤다. 비록 봄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짧은 그 영광의 시간 속에 마지막 봄꽃은 화려하게 모든 걸 보여주고 다시 올 1년 뒤의 봄을 준비한다.

봄이란 녀석이 막 꽃단장을 시작할 땐 벚꽃이 한 자리를 차지했다면 꽃단장을 지우기 시작할 땐 작약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을 지킨다.

작약꽃은 매년 대청호에 작게나마 피며 봄의 마지막을 지켰다. 올해 역시 마지막 아름다움을 뽐내며 대청호는 작약꽃이란 작은 홍조를 띠었다. 그렇게 다시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인 방축골 앞에 섰다.

작약꽃은 꽃이 크고 탐스러워서 함박꽃이라고도 한다. 붉은색과 흰색 등 다양해 원예용으로 많이 쓰인다. 중국에서는 진(晉)과 명(明)나라 때 관상용으로 재배됐다는 기록이 있다.

최근엔 작약꽃으로 만든 부케가 인기다. 원래 작약꽃은 6월에 피는 게 보통이지만 요즘엔 기온이 높아 5월에 핀다. 줄기는 여러 개가 한 포기에서 나와 곧게 서고 높이는 60㎝다. 뿌리는 진통과 복통, 월경통 등의 약재로 쓰인다.
 

방축골 입구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작약꽃밭이 나온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은 멀리서도 눈에 띈다. 방축골 입구부터 작약꽃밭까지는 불과 500m 정도지만 그 아름다움을 육안에 담기 위해 아무리 발을 빨리 채찍질해도 그 시간이 마치 영원 같다.

하지만 오른쪽에서 여전히 푸름을 자랑하는 대청호를 보며 그 영원 같은 시간을 달랜다. 이른 더위에 금세 지칠 만하지만 작약꽃을 보기 위해선 그 수고스러움도 기꺼이 감수하고자 한다.

작약꽃밭에 도착하면 눈의 즐거움이 시작된다. 빨간 작약꽃은 화려함을, 분홍 작약꽃은 수수함을, 하얀 작약꽃은 순수함이란 아름다움으로 서로 뽐내기 바쁘다.

따가운 햇살을 힘껏 머금어서인지 더욱 화려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파란 꽃대는 자칫 화려함으로 피곤할 수 있는 눈의 피로함을 달래며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느껴본다.
 

작약꽃밭 사이에 난 길을 천천히 걸어보기 시작하자 이번엔 대청호가 반사하는 햇살이 눈을 간질거리게 하고 눈을 감아버린다.

자신들의 생이 길지 않을 거란 점을 직감했는지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작약꽃의 페로몬이 힘껏 느껴진다. 그 향에 이끌려 벌은 열심히 날갯짓을 한다.

향기는 벌뿐 아니라 작약꽃의 아름다움에 이끌린 모든 이들을 유혹한다. 죽을 걸 알면서도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그 모든 걸 내려놓게 할 정도로 시각과 후각의 달콤함이란 순간에 정신을 놓고 취해 본다.

그 취함 속에서 정신은 혼미해지지만 그때마다 대청호가 날숨을 보내준다. 대청호의 바람에 작약꽃의 작은 꽃대가 흔들리고 큰 함박눈 같이 동그란 색들도 자연스럽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대청호의 일렁이는 푸른 물결과 작약꽃의 부끄러운 듯 작은 춤이 만나 그렇게 또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렇게 또 카메라를 들게 한다.

 

◆상쾌함과 짙푸르름의 신록 속으로

작약꽃밭에서 아름다움에 취한 뒤 발걸음을 조금 더 북쪽으로 옮겨본다. 산책로라곤 써 있지만 아직 포장되지 않은 날 것의 흙길이 반긴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을 걸을 때마다 먼지가 일지만 어찌 보면 하나의 소박한 멋처럼 조용히 일렁인다. 별거 아닌 그 소박한 멋에 취한 채 오른쪽의 대청호를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높은 나무의 신록이 푸름을 입고 반긴다.

작약꽃의 아름다움은 아니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초록의 그늘이 머리 위에 펼쳐지며 한껏 높게 오른 태양의 손길을 막아준다.

그늘 속에 들어서면 대청호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높은 갈대가 시야를 가린다. 하지만 어디선가 비릿한 대청호 냄새가 난다. 헨젤과 그레텔처럼 어딘지 모를 과자의 집을 찾듯 후각에 의존해 발을 뗀다.

 

대청호의 냄새가 조금 더 강렬해질 때쯤 마치 바다에 온 듯 파도 같은 소리가 귀를 자극하며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 긴 수풀을 헤치고 줄리엣을 보기 위해 밤 새 기다린 로미오, 혹은 직녀와의 만남을 꿈꾸던 견우처럼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청호를 만난다.

사방이 탁 트인 대청호의 웅장함이 계절의 여왕과 만나 그 어느 때보다 푸르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신록이 가기 전인 지금이 대청호는 가장 푸르다. 그리고 상쾌하다.
 

#. 오백리길 힐링산책

우거진 수풀길 따라 유유자적
신록으로 샤워한 듯 온몸 개운
몸도 마음도 초록으로 물들어

 

 

대청호와 흙길이 만난 수변을 천천히 산책한다. 파도를 머금은 해변의 모래처럼 가는 곳마다 멋지게 발자국이 찍힌다.

찍힌 발자국 바로 뒤로 대청호의 물결이 머문 자리를 바로 지워버린다. 물결은 바로 호수바람으로 이어져 생명의 손길이 아직 닿지 않은 갈대를 때리며 스산함을 준다.

대청호의 탁 트인 시야가 주는 상쾌함과 갈대를 때리는 바람이 주는 스산함, 합쳐지기 힘든 둘이 평온이란 교집합을 만들어 낸다.

그 교집합 속에서 충분하고 여유롭게 몸과 마음에 충분한 휴식을 줘본다. 계속해서 울리는 물소리와 평온 속, 그리고 아직 그리 뜨겁지 않아 참을 만한 햇살을 느끼며 눈을 감는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다고 알려진 양수 속에 엄마를 느끼는 아이처럼 말이다.
 

총평★★★★

작약꽃 자체는 매우 아름답다. 대청호를 풍경으로 하면 멋진 사진을 찍을 수도 있어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다. 일원화된 색이 아니라 빨강과 분홍, 하양의 조합이 눈을 매우 즐겁게 한다. 작약꽃밭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찍으면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주변 대청호오백리길 구간도 있어 간단하게 산책하기도 좋다. 주변엔 브런치카페도 있어 식사와 커피를 즐기며 편안하게 대청호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작약꽃밭 자체가 크지 않고 산책로 또한 길지 않단 단점이 있다. 브런치카페 역시 가격이 비싼 편이다. 참고로 작약꽃은 이달까지만 핀다.

글=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사진=노승환·김현호·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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