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여읜 시인의 가슴 찢기는 슬픔
연작시 62편에 담아 하늘로 띄워보내

 

박재홍 시집 ‘모성의 만다라’

깜박, ‘꽃처럼 흔들렸다’
바다 위는 달이
길을 열었고,

슬그머니 걸어서 오는
엄니,
꽃처럼 웃으시네

아들 노곤함 쓰다듬고
가을 저녁처럼
웃으시네

-‘모성의 만다라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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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편함은 장애라기보다는 세상을 바로 보는 원융(圓融, 모든 이치가 하나로 융화돼 구별이 없음)이 되었습니다. 그 근간은 바로 어머니, 고(故) 음순엽 여사이십니다.”

대전시 지정 전문예술단체인 ‘장애인인식개선오늘’의 대표이자 계간 ‘문학마당’ 발행인인 박재홍 시인이 자신의 아홉 번째 시집 ‘모성의 만다라’(도서출판 개미)를 상재했다.

중증장애인(2급 지체장애)인 그는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를 여의고, 사십구재를 맞는 동안 자복(自服)하면서 가슴 찢기는 절절한 모성을 62편의 연작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장애인 예술가 창작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돼 출간된 ‘모성의 만다라’는 이 땅의 모든 어머니에 대한 발원(發願)을 담은 시집으로, ‘모성(母性)’이라는 절대적 명제와 ‘만다라(曼茶羅)’라는 불교적 함의가 결부돼 만만찮은 의미망을 품고 있다.

“어머니의 부재를 통해 스스로를 인식하고, 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자아에 대한 봉사를 명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의식과 의식의 대극점(對極點)은 기울기의 척도가 되고, 작금의 정치적·경제적 현실과 세계사적 흐름은 황폐화돼 가고 있으나 사회적 함의(含意)의 ‘모성의 만다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음을, 어머니를 배웅하고서야 알게 됐습니다.”

이 시집의 시편들은 시인이 어머니를 그리고 추모하는 애달픈 정서를 끌어안고 있어 그 아픔과 슬픔이 먼저일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아들로서 그는 어쩌면 힘겨운 생애의 길목을 지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시인으로서의 그는 그렇게 불행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어머니를 여의면서 또 다른 시적 발화의 필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눈물의 사모곡이 있기에 시인은 내면적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고, 어머니의 부재는 단순한 상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를 더 크고 넓은 원융의 세계로 진입시켜 주는 관문이 되고 있다.

문학평론가인 김종회 경희대 교수는 “모성은 인본주의 및 인간중심주의의 정수(精髓)요, 만다라는 종교가 지향하는 신본주의의 근본을 말하는 불화(佛畫)로, 불교의 신본주의는 배타적이지 않고 보편타당성을 지향한다. 모성에서 만다라의 세계를 보고 만다라를 통해 모성의 깊이를 체현할 수 있다면 이 양자의 화해로운 악수는 시인에게 행복한 시 쓰기를 약속할지 모른다”라며 “모성은 인류의 구원(久遠)한 과제였다. 생명의 탄생과 더불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 동시에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규정할 수 있는 실효적 개념이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1968년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서 태어난 박재홍 시인은 계간 ‘시로여는세상’으로 등단한 후 시집 ‘ 낮달의 춤’, ‘사인행’, ‘연가부’, ‘섬진 이야기’, ‘물그림자’, ‘박동새’, ‘도마시장’, ‘신(新) 금강별곡’ 등을 발표했고, 대전지역 장애인 문화예술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장애인인식개선오늘’을 이끌어오며 장애인들의 잠재된 역량을 결집해 이를 콘텐츠화하는 데 노력해 왔다.

최 일 기자 choil@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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