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대흥동 문화예술의 거리서 버스킹, 장정현 씨를 만나다

학창 시절엔 그저 남들과 다름없는 평범한 나날을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나서길 두려워하는 콤플렉스에 미래에 대한 암담한 고민이 이어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다가온 노래는 그에게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됐다. 평일, 주말 구분 없이 청춘들의 한 가운데서 마이크를 잡고 있다. 대전 중구 대흥동 문화예술의 거리를 지키며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하는 장정현(24·사진) 씨를 15일 만났다.

장 씨는 수년 전,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게 뭘까’라는 현실적이면서도 풀기 어려운 숙제를 짐처럼 안고 살았다. 지금이야 그 답을 어느 정도 찾은 것도 같지만 아직 완벽한 꿈을 꾸기엔 모든 게 부족하다고 고백했다.
 

“남들처럼 평범한 나날을 보내다 음악에 빠져버렸어요. 그렇다고 그때 제가 나중에 버스킹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했죠. 노래를 하면 할수록 뭔가 행복하고 내게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그런 느낌이 너무 좋아요.”

꿈을 정하지 못한 아들에게 부모님은 어떤 강요도 하지 않았다. 그의 부모님은 묵묵히 자식이 제 갈 길을 저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무언의 힘이 되어줄 뿐이었다. 그 덕분이랄까. 나름대로 큰 용기를 내 노래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노래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어린마음에 공부는 안하고 주변에서 노래 좀 한다고 하니 건방떤다고 하실까 봐 주저했어요. 2년을 고민하다 말씀드렸는데 부모님께서 딱 그 말씀만 하시더라고요. ‘네가 하고 싶은 걸 찾았으니 다행이다’라고요.”

군에서 제대하고 그는 곧장 실행에 옮겼다. 군 생활하면서 모아둔 적금을 깨고 버스킹에 필요한 장비들을 구입해 대흥동 지금 그가 서 있는 자리에 첫발을 디뎠다. 처음엔 두려운 나머지 친한 형과 함께 섰지만 어느새 그는 혼자서도 문화예술의 거리 한 가운데서 청춘들에게 음악 선율을 선사하는 의젓한 사내가 돼 있었다.

“군 생활하는 내내 제가 사람들 앞에서 버스킹하는 상상을 끊임없이 했어요. 물론 처음엔 제가 주도적으로 하진 못했지만 지금은 혼자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나가서 노래하곤 합니다. 노래가 일상이 된 거죠.”

버스킹을 하면서 세상엔 별 사람들이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도 했다. ‘내 친구가 더 잘 부르는데 왜 쟤가 여기 있냐’, ‘저 사람 돈 없어서 나왔나 보다’라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부터 자신만 아는 노래를 불러달라며 생떼를 쓰는 사람, 술에 취해 팁박스를 발로 차는 사람 등 어린 나이지만 노래 한 번 하려다 세상사 우여곡절을 한 번에 겪었다.

“예전엔 속상하기도 했지만 이젠 그러려니 해요. 시끄럽다고 경찰에 신고하는 분들도 계세요. 여기 문화예술의 거린데…. 화가 나더라도 지금은 무조건 참는 편이에요. 참으려니 또 참아지더라고요.”

그렇다고 마냥 힘들었다면 아예 포기했을 거다. 노래가 끝나면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쳐주는 박수는 그에게 힘이자 노래를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 번은 지난주에 뵀었던 분이 또 오시더라고요. 아는 척을 했더니 일까지 빼셔서 제 노래를 들으러 오셨대요. 어떤 분은 쪽지를 남기셨어요. 노래 잘 듣고 가니 힘내라고요. 내 노래를 듣고 힘을 내는 분들이 계시니 뿌듯하죠.”

그에게 아직 미래에 대한 완벽한 생각은 없다. 노래를 하고 있으니 남들은 가수가 꿈이겠거니 하겠지만 그는 가수를 꿈꾸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내일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뿐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만의 미래를 하나하나 완성해 갈 거다. 사람들과 마주하며 그는 오늘도 대흥동 한복판에서 그만의 목소리로 꿈을 노래하고 있다.

“정말 노래가 좋아서 하는 거죠.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미래에 대해 두려움이 없진 않은데 10년 후 저는 뭘 하고 있을지 가끔 생각해보면 예전처럼 불투명하진 않아요. 조금씩 저에 대한 확신이 생기고 있습니다.”

글·사진=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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