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호<내포취재본부장>

 

엊그제 충남여성정책개발원에서는 의미 있는 토론의 장이 열렸다. 인구보건복지협회 대전충남지회가 마련한 ‘새로운 가족문화 공론화를 위한 포럼’이다. 이날 포럼은 산업화, 도시화, 서구화 등 급격한 사회변화의 영향으로 다양화된 가족형태를 받아들이기 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조성하는 자리여서 의미가 컸다. 포럼에서 제기된 내용은 대략 이렇다. 단기간의 고도성장과 한국사회의 구조적 변화 등으로 가족의 다양성과 복잡성이 증가했다. 즉, 산업화 이후 급격하게 기존 가구의 모습이 무너지고 가족 형태가 다양해 졌으며 1인 가구가 증가하는 가구의 미니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변화는 구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 세대들이 결혼을 늦추거나 회피하고 출산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아지면서 맞벌이 가구 증가로 인한 일·가정 양립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 맞춰 가족의 형태적, 내용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정책도 포용적 가족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산업화 이후 등장한 새로운 가족형태를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다양한 가족 지원 전략을 수립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인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실태는 실로 심각한 수준이다. 유엔인구기금이 지난 10월 발표한 2017 세계인구현황을 보면 우리나라 여성 1인당 평균출산율은 1.3명에 그쳤다. 세계 평균 2.5명을 크게 밑돈다. 낮은 출산율로 인해 인구성장율은 제자리걸음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추정치 기준으로 분석한 한국 여성의 합계출산율도 1.26명에 불과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최하위다. 통계청이 발표한 올들어 9월까지 누적 출생아 수는 27만 8100명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40만 명을 밑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통계가 말해주 듯 우리나라는 현재 심각한 ‘인구절벽’ 상황에 처해 있고 저출산 문제는 국가적 위기로 까지 인식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유교관에 매몰돼 새로운 가족형태를 쉽게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비혼 동거 가족이 대표적인 예이다. 경제적 이유 등으로 젊은 세대 사이에 동거 문화가 확산되고 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젊은 세대들은 사회구조의 빠른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했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유교적 가치관의 잣대로 그들을 비정상적인 가족으로 낙인찍었다. 사회의 편견으로 그들은 큰 죄를 지은 것처럼 그늘진 삶을 살고 마음대로 아이를 낳을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국가들이 과감하게 비혼 동거가족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출산율을 높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지금보다 더 빠르게 사회를 변화시킬 것으로 예측된다. 변혁의 시대를 따라가려면 새로운 가족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획기적이고 진보적인 정책 전환은 필수적이다. 지금처럼 그저 미혼자들에게 결혼하라고 권장하거나 결혼한 가정에게 더 많이 자녀를 낳으라고 독려하는 단순한 출산정책으로는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지난 10년간 10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고도 출산율을 높이지 못한 지금까지의 출산정책이 이를 입증하지 않는가. 저출산 극복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 구축과 병행해 이제는 비혼 가구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야 할 때가 왔다. 사회적 멍에를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그들을 폭넓게 가족으로 인정하고 법적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개인이나 국가 모두가 출산의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가족의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저출산 극복의 새로운 출발선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석호<내포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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