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면 생명 나눔에 동참해 달라는 호소가 빗발친다. 그러나 한 번의 참여로 9명의 생명을 살린다는 장기기증의 경우 해가 갈수록 더 차가운 한파를 맞는 모양새다. 참여율도 저조할뿐더러 아직 우리 사회엔 장기기증자를 예우하는 사회적인 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장기이식 대기자는 3만 286명인데 장기기증으로 이어진 경우는 2745건에 그쳤다. 충청권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대전과 세종, 충남의 장기기증 희망자 수는 7299명이었지만 실제 장기기증은 158건에 불과했다. 대기자는 많은데 장기기증 신청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환자를 곁에서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가족은 애만 탈 수밖에 없다.

장기기증이 필요한 환자를 둔 천 모 씨는 “벌써 4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환자는 매일을 고통에 살고 있는데 신체 멀쩡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국내 장기기증이 저조한 데엔 우리 전통의 유교적 문화가 가장 큰 이유로 손꼽힌다. 예부터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持父母)’라는 전통적인 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 박혀 있다 보니 아무리 숨이 멎은 신체라도 훼손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생전 장기기증에 서약을 했더라도 사후 유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건 이 같은 전통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

복잡한 절차도 문제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19~59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장기기증 인식조사를 보면 장기기증 의향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413명(41.3%)이지만 장기 기증 등록자는 17명(1.7%)에 그쳤다. 그중 기증 의사가 있어도 등록 방법을 모른다거나 절차가 복잡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40%에 달했다. 복잡한 과정 등 때문에 장기기증 희망자가 장기기증 신청으로 이어지지 않는 거다. 장기기증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현장에선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 기증자에 대한 예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와 맞물려 사회적으로 장기기증을 둘러싼 오해를 해소하고 기증 문화 확산을 위한 정부 당국의 역할을 강조하는 의견도 제기된다. 장기기증이 개인의 사안을 벗어나 국가, 더 나아가 국제적인 사안인 만큼 정부 노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장기기증에 대한 중요성이 확산되고 있는 점에선 고무적이다. 그러나 장기기증 절차에 대한 개선이나 우리 사회 인식 변화가 부족한 건 사실이다”며 “장기기증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부각되면서 많은 이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증자에 대한 예우나 제도 개선을 통해 장기기증이 더욱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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