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대전민예총 이사장

 

지난달에 목원대 신임 동문회장 취임식에 다녀왔다. 도안 신도시로 옮긴 뒤 주변이 급격히 개발됐기에 할 수 없이 휴대전화 내비게이션을 켜고 찾아가니, 전에는 멀리 떨어진 벌판이었던 것 같은데 주변이 번화가가 돼 놀랐다. 정문 앞을 지나는데 수위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 거수경례로 맞아 또 놀랐다. 취임식장 앞에 길게 늘어선 화환 행렬을 보며 신임 동문회장의 큰 영향력이 실감나 다시 놀랐다.

목원대 김병국 신임 동문회장은 충북 옥천에 있는 교동식품 대표로 대전민예총의 청년유니브연극제를 매년 후원하면서 예술과 기업이 함께하는 메세나를 실천하는 분이다. 더구나 민주화 운동권 출신으로 현재 대전세종충남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니, 이날 취임식엔 대전·충남 대다수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총출동한 듯했다.

김 회장은 운동권 분위기가 전혀 없는, 맑고 푸근한 미소를 지닌 충청도 아저씨의 모습에, 약간 어눌한 말투이면서도 정감이 넘치는 호인이다. 그러니 내빈들이 넘치고 총장을 비롯한 대학 구성원들이 식장을 가득 메운 게 아니겠는가. 놀랍고 또 부러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지역의 대표적 ‘분규 사학’으로 언론에 오르내렸는데, 이렇게 민주동문회가 총동문회를 주도하게 되다니, 큰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임 동문회장의 40여 분에 걸친 이임사를 긴박감 속에 들으며 목원대가 아주 힘겹게 오늘에 이르렀음을 깨달았다. 전임 회장은 자신이 2대에 걸쳐 책임을 맡는 동안 모교의 온갖 비리에 맞서 겨우 비리의 끝을 자른 데 불과함을 힘겹게 말했다. 그 얘기를 들으며 이미 익숙한 풍경을 다시 보는 데자뷔를 느끼고 깜짝 놀랐다. 전임 총장과 이사장이 한데 어울려 학교 옆 부지를 500억 원에 사들여 초대형 건물을 신축하려 한 걸 알고 법적 투쟁 끝에 어렵게 중단시켰다는 부분은 참 신기했다. 한남대가 망해가는 부패 사학인 서남대를, 500억 원을 빌려 초대형 사학으로 비약하겠다는 야심을 보인 것과 정말 유사하지 않은가. 몇 년간의 법적 다툼 끝에 힘겹게 이를 막아냈지만 목원대는 그 후유증으로 부실 사학 판정을 받기도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전임 회장의 반대 논리는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데 시대적 추세에 역행하는 건 모교를 망하게 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모교 동문 교수나 교직원들 상당수가 무모하고 자멸적인 투자 사업에 부화뇌동해 동문회를 핍박하는 데 앞장서고 또 학생회를 회유해 총장이나 이사장의 호위부대로 활용하는 것 등도 어디선가 익히 본 듯해 계속 듣기가 몹시 괴로웠다. 그래도 그 길고 험난한 싸움 끝에 교내 민주화에 앞장선 신임 총장의 축하 속에 민주동문회의 대부격인 신임 동문회장에게 발전의 토대를 마련해 줬으니 전임 회장의 소임을 훌륭히 마친 셈이다. 그래서인지 모두 숨 죽인 채 듣던 이임사가 끝나자 오랜 박수가 이어졌다.

‘플랜 B’를 내세워 서남대 인수계획을 끝까지 추진하겠다며 옥쇄의 비장함마저 내비치던 한남대의 무모한 도전은, 얼마 전 가뭇없이 꺼져버렸다. 주변의 수많은 우려도 아랑곳하지 않던 그 기세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어떤 독지가가 나서 1000억 원 넘는 돈을 기부하기로 했다며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려 안간힘을 쓸 때는, 오히려 연민을 느꼈다. 더구나 목사님이 대부분인 이사회마저 그런 헛된 탐욕의 맘몬에 굴복하는 걸 보면서는, 개신교에 대한 심각한 회의마저 들었다. 목원대든 한남대든 감리교와 장로교로 교파만 다를 뿐 기독교 영성을 갖춘 리더를 배출한다는 건학이념은 같을 텐데 왜들 이러는 것일까. 그래도 목원대는 힘겨운 저항 끝에 새로운 출발선에 섰는데, 한남대는 무모한 도전으로 에너지가 피폐해졌는데도 아무도 책임지지도, 또 책임을 묻지도 않으니 심각한 상황이다.

한남공동체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발언해 합리적 결론을 도출했다면 그런 무모한 도전은 없었을 텐데, 그간 무기력과 자포자기로 숨죽이고 방관했으니 이제 와 새삼 무슨 책임추궁을 하겠는가. 그러나 그건 아니다. 이제라도 따져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미 말했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옳은 소리로 비판하면 그것이 바로 이기는 길이라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해야 한다고. 눈치만 보면 결국 악이 승리한다고. 세상은 이미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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