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에 일어나 잠이 덜 깬 상태에서 화장실로 가 지긋이 거울을 바라본다. “오늘도 똑같구나”하는 혼잣말이 나온다. 세상의 모든 생명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에 대한 답은 어제도, 오늘도 몰랐다. 내일도, 모레도 모를 것이다. 평생 모를 수도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잠을 깨고자 넘어가지도 않는 밥숟갈을 억지로 입에 쑤셔 넣는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짜증을 덮고자 집을 나설 땐 제법 사람 구실할 수 있게 보이도록 정장도 잘 챙겨 입는다. 

 

아니 정장이 아니라 인두겁이라고 보는 게 맞다. 늦게 나온 건 아니지만 벌써 버스정류장엔 벌써 많은 이들이 모였다. ‘버스에 자리는 당연히 없겠지…. 매일 지겨운 삶을 이 사람들은 어떻게 버티는 거야?’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젠 자연에 파묻혀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자연 속에서 느긋하게 걷기도 하고, 시원한 바람 맞으며 자전거도 타고, 체력이 남아돌면 등산도 좀 하면서 하는 바람과 함께 말이다.

대청호오백리길 2구간은 이현동이라는 마을에서 시작한다. 한산한 시골에 세련된 도시주택이 위치한 상반된 매력이 시선을 끈다. 이곳에서의 첫 걸음은 도시의 아스팔트가 아닌, 시골의 아스팔트에서 시작한다. 멀리 생명의 씨앗이 태동할 밭의 흙냄새를 몰고 온 찬바람이 조심스럽게 길 앞에 뿌려진다. 그러나 찬바람 속 미세한 따스함이 느껴진다. 이곳에선 봄이 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시골의 정돈되지 않은 아스팔트가 쭉 이어져 걸음을 옮기는 데 어려움은 없다. 그저 담백한 시골의 촌스러움을 만끽하기에 너무나도 적당하다. 발소리에 민감한 개의 짖음이 하나둘 늘어나 시끄러움일 수 있지만 이현동의 풍경은 이를 화음으로 만든다. 소리만 들으면 덩치는 산만한 개일 것 같지만 강아지라 할 정도의 작은 생명체가 온 털을 세워 덩치를 부풀린 게 제법 귀엽다. 짧디 짧은 시골의 아스팔트가 사라지고 1구간에서도 볼 수 있었던 생태습지를 마주하게 된다. 이촌지구와 강촌지구를 합친 것보다 크고 시야 건너 거대한 대청호를 가릴 정도인 이현동생태습지공원이다. 걸은 지 오래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체력은 상당하나 곳곳에 꾸며진 정자와 벤치의 어우러짐이 자연스럽게 다리를 멈추게 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은빛의 억새, 그리고 억새가 흔들릴 때마다 사이사이로 보이는 녹지와 푸른 대청호까지 삼위일체 풍경에 작은 감탄을 어찌 내뱉지 않을까.

짧은 휴식 뒤에 본격적인 걷기시간이 반긴다. 앙상한 가지의 삐쩍 마른 나무가 양 옆에 호위대처럼 늘어서 이슬을 머금은 낙엽길이 반긴다. 아직 대청호는 두꺼운 얼음옷을 입었지만 이를 벗고자 노력하는 얼음옷을 녹이려는 대청호의 소리가 우렁차다. 얼음에 둘러싸여서인지 건너야 하는 징검다리도 보지 못해 지나쳤지만 뜻하지 않은 작은 모험이 ‘같이 가요, 대청호오백리길’팀을 마크 트웨인의 소설인 ‘톰 소여의 모험’ 속으로 안내한다. 

뜻하지 않았던 모험을 마치고 징검다리로 돌아와 길을 건너면 대청호에서 체험마을로 유명한 찬샘마을이 등장한다. 찬샘마을을 등지고 대청호 가장자리를 돌기 시작하면 호반길 특유의 시원한 시각이, 유독 심하게 불어오는 찬바람의 촉각이, 찬바람이 만들어낸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의 청각이, 물 특유의 짜릿한 후각이, 그리고 감성에 젖어 한 잔 마시는 커피의 미각이 이곳에서 어우러진다. 오감이 자연스럽게 뭉쳐지니 육감까지 깨우쳐진다.

적당한 거리의 호반길이 종료되면 작은 능선을 가로질러 또 다른 능선을 따라 들어선 임도로 합류한다. 이번엔 바짝 마른 나무가 아닌 새파란 침엽수림이 양 옆에서 임도를 보좌한다. 임도는 약 5㎞로 절대 짧지 않지만 자전거를 타기에도 편할 정도의 안락함을 자랑한다. 대청호를 왼쪽에 두고 어느새 길의 끝까지 다다르면 대청호를 마주하게 된다. 옆의 성치산으로 발길을 오른쪽으로 돌려야 한다는 신호다. 그러나 왼쪽으로 가면 전망 좋은 곳이 있어 잠시 작은 일탈을 해도 좋다. 

침엽수의 푸른 숲을 가로질러 100m 정도 걸으면 작은 터가 나온다. 사방은 높은 나무의 벽으로 대청호를 쉽게 허락하지 않지만 인위적으로 의자처럼 놓인 나무에 걸터앉으면 대청호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높은 나무는 시야를 가로막지만 소음도 막아주기 때문에 조용히 대청호의 잔잔한 아름다움의 물결과 소리를 즐길 수 있다. 그저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해탈이 가능할 정도로 마음이 평온해진다.

다시 발길을 돌려 성치산으로 향하면 2구간의 절반을 넘었다고 볼 수 있다. 성치산은 해발 200m 남짓의 산이지만 가는 길은 절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르다. 조금의 걸음만으로도 잔잔한 숨소리는 사자에게 목덜미를 잡힌 작은 사슴의 마지막 숨소리로 바뀔 정도로 금방 지친다. 오르막은 아쉽게도 한 구간만 있는 게 아니라 두세 개나 돼 체력조절이 필수다. 정상엔 성치산성이 위치했지만 지금은 터만 남았을 정도로 흔적은 찾기 힘들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은 곧 비경으로 달랠 수 있다. 산을 모두 오르고 10분 정도 걸으면 탁 트인 곳에 넓은 대청호가 펼쳐진다.

높이 오른 수위가 다도해(多島海)가 아니라 다도호(多島湖)처럼 대청호에 수많은 섬을 만든다. 섬 각자마다 하나의 생태계가 조성된 것마냥 모두 초록의 자태를 선사한다. 푸른 대청호와 초록의 섬, 그리고 하늘의 하얀 구름이 융합돼 이제까지의 고생스러움을 잊기에 충분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옛말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볕이 잘 드는 곳을 찾아 아무 말 없이 대청호의 아름다움에 취한다. 이런 아름다움을 언제든 꺼내 보고 싶다는 욕심에 인간은 사진기를 만들었을 거다. 대청호의 숨겨진 비경을 마지막으로 2구간의 끝을 향해 걷는다. 2구간의 마지막인 냉천종점까지 약 한 시간 조금 못 미치는 거리지만 성치산을 내려오면 힘든 구간은 더 이상 없다. 그저 잠깐 찬샘정에 들러 다시, 그리고 조용히 대청호를 바라본 뒤 대청호와 함께 걸으면 된다.

◆대청호오백리길 2구간 보고서
2구간은 1구간과 다른 장점이 있다. 우선 초입부터 즐길 거리가 많다는 점이다. 이현동에서 가장 유명한 도자기 빚기를 체험할 수 있는 하늘강아뜰리에와 농촌체험마을인 찬샘마을이 있다. 곳곳에 약초체험 등 다른 체험프로그램도 있어 다양성은 확보됐다. 이를 집적화한 대규모의 체험프로그램 마을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해보는 게 좋아 보인다. 성치산을 제외하고 전체적인 코스가 걷기는 물론 자전거 타기에도 좋은 만큼 자전거대회 개최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미 2구간의 일부는 자전거를 위해 설치됐다는 안내판도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대회를 개최한다고 하면 대회 이전에 이현동 초입에서 약초체험을 통해 상처에 바를 수 있는 약을 직접 만들어보는 프로그램 구성도 괜찮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성치산의 가파른 구간인데 이를 우회할 수 있는 임도를 개설한다면 해결할 수 있다. 다른 방법으로 철인경기를 벤치마킹해 자전거를 메고 등산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한다면 극한까지 자신을 몰고 가는 경기를 좋아하는 마니아에겐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요소다. 자전거 관련 사회적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자전거 용품 판매의 프로그램이나 지역민의 참여로 주전부리를 만들어 파는 소소한 일거리 제공도 꾀할 수 있다.

글=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사진=노승환·김현호 기자, 영상=정재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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