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차도·횡단보도는 '안전사각'

지난해 10월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 내 횡단보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B 양이 숨진 사고와 관련해 경찰은 사고 장소를 도로교통법이 적용되는 도로로 보고 가해자에 대해 교통사고처리특례법 12대 중과실(횡단보도 사고)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이후 검찰 기소단계에서 12대 중과실 혐의는 포함되지 않았다. 사고 지점을 도로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한 판단은 법원의 결정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이전 기사 - [보행자 우선사회로 첫걸음 뗄까] 1. 가해자에 관대한 법>

현재 아파트 단지의 차도는 도로와 사유지 차도(이하 사도)로 구분하는 기준이 판례에 의존하는 등 명확치 않은 상황이다. 그 구분에 따라 교통사고 사망자 발생 시 법적 처벌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혼란에 따른 리스크가 크다. 아파트 내 사도는 도로교통법이 적용 되지 않고 아파트 내 도로는 도로교통법이 적용되지만 단지 내 횡단보도는 대부분 사설이기 때문에 교통사고처리법 12대 중과실이 적용되지 않는 맹점이 있다.

대전경찰 관계자는 “도로 구분은 도로교통법에 따라 판단을 하고 있지만 일부 항목에 해석의 문제가 도출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아파트 내 불특정 다수가 출입 할 수 있는지, 원활한 교통 확보를 담보할 수 있는지 등의 기준에 따라 도로도 되고 사도도 될 수 있다. 또 몇 달 새 도로와 사도가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 관계자는 “도로교통법상 도로로 인정되지 않을 때 면허 없이 운전을 해도 무면허 운전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전시에 따르면 지난해 대전의 20세대 이상 아파트단지는 885단지로 4481개 동에 34만 9891세대가 있다. 대전지역 세대 수가 61만 4639세대인 걸 감안하면 절반 넘는 세대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등 지역사회에서 아파트 단지 거주자의 비율이 높은 상황이다. 그러나 아파트 내 차도에 대한 법적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 안전사각지대라는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B 양의 부모가 국민청원 한 ‘아파트 내 횡단보도 교통사고 12대 중과실 포함’ 골자의 글에 21만 여 명의 국민이 공감를 표시한 건 결국 아파트 내 차도 등 교통안전 사각지대에 대한 해소와 보행자 보호에 대한 목소리가 뜨겁다는 것을 방증한다. 청와대는 14일 국민청원에 대해 답변을 내놓을 예정이다. 청와대의 답변은 민원인의 12대 중과실 포함 범위를 넘는 ‘교통안전 사각지대’ 해소 차원의 답변이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경찰청과 국토부, 법무부 등 관계기관 협의에서 ‘운전자는 보행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등 보행자 안전을 우선 시하는 내용을 법안에 포함시키자는 의견이 개진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기관 의견들을 토대로 정부가 교통사고처리특례법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법 개정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별도의 조항(4조)를 만드는 것 등이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골자는 단순히 아파트내 횡단보도가 교통사고처리특례법 12대 중과실에 포함되는 차원을 넘어 ‘보행자 안전’을 우선 시하는 사회분위기를 확산시킬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다만 교통사고에 대해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는 것을 검토할 경우 그 변화로 인한 파장은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곽진성 기자 pen@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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