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사자 10명중 6명 “태움 경험”…의료기관 갑질·인권유린 심각

의료기관의 갑질, 인권 유린이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간호사 10명 중 6명은 의료기관에서 근무 중 욕설이나 반말, 무시, 모욕적 언사 등 폭언을 경험했고 또 10명 중 4명은 속칭 ‘태움’ 문화를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20일 노동조합 회의실에서 의료기관에서 발생하는 갑질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전국 54개 병원의 간호사(7703명), 의료기사(1970명), 간호조무사(648명) 등 종사자 1만 1662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실시됐다. 조사 결과, 조사 참여 간호사 7703명 가운데 병원근무 중 욕설이나 반말, 무시, 모욕적 언사 등 폭언을 경험한 비율은 65.5%로 나타났다.

또 간호사의 40.2%가 ‘태움’을 당했다고 답했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의 태움 문화는 최근 서울아산병원 신입 간호사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기본적인 출퇴근 시간도 지켜지지 않았다. 조사에 참여한 병원 노동자의 59.7%, 간호사의 70.6%가 근무 시간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해도 시간 외 수당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휴가도 자신의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가가 강제로 배정된 사례가 있다’는 응답자는 39.3%였고, 병상가동률 등을 근거로 ‘원하지 않는 휴가나 반차가 강제로 배정’된 경우가 38.3%, ‘원치 않는 휴일 및 특근 근무를 강요받은 사례’도 30.7%에 이르렀다.

휴가강제 배정에 대해 직종별로 보면 간호사가 48.2%로 가장 많았고, 간호조무사 41.2%, 의료기사 19.3% 순이었다. 특근근무 강요 역시 간호사가 37.3%로 가장 많았다.

간호사에게 선정적인 춤 공연을 강제해 논란이 일었던 한림대성심병원 사례처럼 업무와 무관한 일을 강요받은 사례도 많았다. 조사에 참여한 간호사의 31.2%가 ‘업무와 관련 없는 행사에서 단체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회식 자리에서 술을 따르라고 강요받았다’는 응답도 22.7%에 달했다. 이밖에 정식발령 전후 무급으로 일하거나(13.4%), 광고물배포 등 환자유치활동(3.5%), 청소·풀뽑기·주차관리(41.5%), 커피심부름(17.9%), 고위직의 집안일(3.0%) 등을 지시받거나 거짓서류나 의료법 위반 행위를 강요받은 후 이를 은폐하는 등 부정행위를 강요받은 사례(8.9%)도 이번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특히 노조는 이번 실태 조사에서 간호사들이 의사나 약사 업무를 대신하는 등 불법의료행위사례가 만연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오는 4월까지 5만 여명의 보건의료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실태조사를 시행할 방침이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우리나라 의료기술이 세계 최고라고 자랑하며 의료 수출까지 하고 있지만 정작 병원의 인권 유린 행태는 심각했다”며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인과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존중받는 환경에서 환자도 안전할 수 있다”면서 “병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노·사·정이 함께 논의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선영 기자 kkang@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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