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전 대전문인협회장

아름다운 그림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화랑에서는 연일 유명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화랑만이 아니다. 서너 살 아기 아장아장 걸음마 배우는 골목길이 그렇고, 할아버지 할머니들 세월 낚는 경로당이 그렇다. 나는 가끔 화랑에 들른다. 전시장에 들어서서 동양화 몇 편 감상하다 보면 금세 고향에 와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자연의 천연 색상이 기술과 합작하여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다. 관람자의 입에서는 탄성이 절로 튀어나온다. 아름다운 장면들을 보고 감탄하지 못함은 정서상 문제가 있다.

나는 오늘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을 향하고 있다. 눈 축제 테마 기차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얼굴 가득 미소를 간직한 가족과 연인들의 단란한 모습에서 오늘 여행이 즐거우리란 예상을 한다. 반드시 그럴 것이다. 객차 안이 들떠 있다. 모두가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가는 기분이다. 완전 동심으로 돌아가 어린이가 되어 있다.

아름답게 늙는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 아닌가 생각한다. 티 하나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인상의 일가족의 모습에서 그걸 느낀다. 오 척 단구의 할머니가 눈에 띈다. 그 뒤로 대여섯 명의 노인(?)들이 뒤따른다. 아마도 가족 같은 느낌이 든다. 예상했던 대로다. 일가족이다.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는 어머니를 위해 흩어져 사는 자식들이 시간을 낸 것이다. 그 어머니의 나이가 졸수(卒壽)란다. 첫째 딸이 70세이고, 바로 다음이 아들인데 68세란다. 그렇게 1남 5녀를 둔 어머니가 자식들의 손을 잡고 눈꽃축제에 동참한 것이다.

걸음걸이가 나이에 비해 경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차 통로를 지나가는 어머니의 뒤를 큰딸이 바짝 따른다. 그 뒤를 또 다른 자식들이 따른다. 보기 좋은 그림이다.

눈꽃 관광열차라서인지 이벤트 행사가 많다. 행사 요원들이 기다란 풍선에 바람을 집어넣어 각종 모양을 만들어낸다. 여행객들의 요구대로 만들어준다. 강아지를 만들고, 전장에서 사용하는 칼을 만들고, 꽃을 만들고, 월계관을 만든다. 그걸 받아든 사람들의 입이 귀에까지 닿아 활짝 개화한 꽃이 된다. 환한 웃음들을 폭발시키는 여행객들의 모습에서 나는 행복을 건져 올린다.

주최 측은 열차의 한 량을 이벤트홀로 마련했다. 음악에 맞추어 리듬을 탈 수 있는 곳이다. 트위스트 곡이 주로 흐른다. 남녀노소가 웃음을 매개 삼아 몸을 흔들 수 있는 곳이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사람들은 아까 말했던 노인네 가족이다. 구순 할머니의 리듬 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저 나이에, 저렇게 유연할 수 있을까. 그 바로 뒤의 고희의 큰딸 몸도 예사롭지 않다. 일가족이 벌이는 춤판을 바라보고 있는 나도 흥에 겹다.

오늘 열차 여행하기를 잘했다 싶다. 나도 같은 모임의 몇몇과 함께 왔다. 우리는 그 가족과 같은 대열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장수 집안으로 다복한 가족의 집안 분위기 속에 침잠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여행의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게다가 다복이라는 말의 큰 뜻을 추억의 바구니에 가득 담을 수 있었음이 큰 수확이다. 인공 그림이 아닌 자연 그림을 감상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감사한다. 나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의 행복과 건강과 성취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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