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산뜻한 글씨를 쓰고 싶어서 적절한 붓 하나를 사려고 ‘백제필방’에 들렀다. 그 주인은 연세가 많이 든 분이다. 그와 오래 전에 이야기 했을 때, 그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로부터 붓 매는 법을 배웠다. 제밥은 제 손으로 벌어먹을 한 가지 기술은 가져야 한다면서, 붓 매는 할아버지로부터 그 기술을 배워 지금까지 그 일로 살아간단다. 당신이 맨 붓 하나를 골라 받고, 종이와 붓과 먹과 벼루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누었다. 연습 종이나 전시하기 위하여 쓰는 종이 또는 좀 더 나은 붓글씨 쓰는 종이는 거의 다 중국에서 수입해 온다. 가끔 ‘한지’라는 것도 한국인 기술자가 중국에 가서 공장을 만들어 중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생산한 것인데, 그것도 그 쪽 인건비가 매우 많이 올라서 주인의 수익이 적게 난단다. 그러니까 ‘한지’도 한국인 기술에 중국땅에서 중국인 노동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가끔 좋은 종이, 전주에서 생산한 진짜 한지에 글씨를 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종이가 너무 비싸서 살 수가 없다. 닥나무를 이용한 그나마 ‘대량생산’은 전주에서만 나오는데, 물 오염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공장들이 거의 폐쇄되고 한두 곳에서만 만들어낸단다. 그러나 한지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쉽게 사서 쓸 수가 없다. 특별히 높은 귀한 작품을 하는 사람만 쓸 수 있는 값비싼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것도 머지않아 문을 닫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저기에서 닥나무를 심어서 개인이나 아주 작은 단위로 한지를 생산하는 수도 가끔 있지만, 그것은 명목뿐이고 너무 비싸서 일상용으로 사용하기는 쉽지가 않다. 어찌 되었든 옛날 사람들이 쓰던 순수한 한지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먹과 벼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진을 태워서 만드는 먹 생산 역시 곧 마감하게 될 것이란다. 그런 복잡하고 힘드는 일을 이어받아 나갈 젊은 인력이 없다. 지금 좋은 먹 몇 개를 미리 마련해 두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두 자루를 샀다. 물론 일본에서는 먹을 생산한단다. 벼루를 깎는 기술자도 이제는 없다. 돌을 깎을 때 나오는 돌가루로 폐가 손상되고, 건강이 나빠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또 벼루를 쓰는 사람이 파격으로 적어지기 때문에 그것으로 생활이 되지 않는다. 몇 사람 남아 있는 연세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면 벼루 생산도 더 없을 것이란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벼루를 써왔기에, 그것은 금방 닳아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벼루가 쓰이고 남을 것이란다. 문방사우라는 종이 먹 벼루 붓이 사라지게 됐다. 주인과 인사하고 나오면서, ‘아, 이 귀한 것이 사라지는구나’ 하는 맘이 아프게 들었다. 전통기술로 족자나 액자를 표구하는 손길도 많이 없어졌다. 붓글씨를 많이 자주 잘 써보겠다는 맘을 가진 나는 ‘사라지는 것들과 함께’ 살아야겠구나 하는 맘이 들었다.

그러다가 어제는 머리 자르는 가위 하나를 사려고 이미용도구를 파는 가게에 들렀다. 진열대에 있는 용구들은 전문가들이 쓰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비쌌다. 내 아내나 나처럼 머리를 자르고 수염을 살짝 자르는 정도라면 일상용의 가위면 충분했다. 국산품은 많이 비쌌다. 보통 쓰는 것은 중국산이란다. 그러나 보기에, 손에 잘 맞는 것은 국산품이었다. 값이 싸지 않았지만 그것을 샀다. 그 때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국산가위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아요. 대전에서 두 사람이 생산했는데, 그분들이 돌아가셨어요. 일본에서는 생산돼요. 비싸지요.’ 이것도 사라지는구나!

그러나 얼마나 많은 것들이 사회가 달라지고 생활방식이 변하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것이 나타나는 것만큼 빠르게 오래도록 이어오던 것들이 사라졌을까? 그것과 함께 상당히 많은 귀한 삶의 덕목과 가치들이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을까? 물론 바뀌는 것은 흐르는 물처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말은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가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도 한 가지는 참 아쉽고 아프다. 그 가치와 삶이 파랗게 살아야 하는 데 그것이 짓뭉개지고 내팽개쳐지는 것이 안타깝다.

2023년을 되돌아보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기운을 주고 희망을 가지게 했던 한 사람이 떠오른다. 적어도 사람이라면 저렇게 당당하고 올곧고 꼿꼿해야 하는구나 하는 한 사람이다. 그는 해병대 박정훈 대령이다. 법에 따라서 잘 수사했는데, ‘대통령의 격노’로 국방부장관의 결재가 달라지고, 사령관의 맘이 바뀌고, 수사와 전달의 과정이 뒤죽박죽 될 때 오로지 당당하게 정직한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사람. 그래서 사사로운 감정으로 나타나는 갈짓자의 명령에 불복하고, 수십 년 배우고 지켜온 철저한 군인정신을 살려 법과 양심에 따라 일을 수행했다는 것으로 군인에게는 매우 무겁고 무서운 ‘항명죄’로 수사를 받고 재판을 받고 있다. 강력한 권력을 삿되게 지배하는 못된 짓에 의하여 긴 역사과정을 흘러오면서 귀한 덕목과 가치로 인정되던 ‘정직’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것이 참 아프고 슬프고 쓰리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새로 오는 것과 사라지는 것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로 오는 것은 무조건 아름답고 좋은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은 가치가 없고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흐름 따라 사라지는 것과 살아야 하는 것이지만, 귀한 가치는 찾고 살리고 유지할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곰곰이 따지고 생각하면서 ‘사라져 가는 귀한 가치’를 찾는 운동을 함께 펼쳐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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