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가

1696년 영국에서 새로운 조세 징수가 시작되었다. 귀족과 부호들은 벽돌로 자기 집 창문을 막기 시작했다. 끈질기고 억척스러운 징세원의 진입을 막기 위한 저항이 아니었다. 창문의 개수에 비례해 세금을 내는 ‘창문세’를 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현대 기준으로 보면 창문세는 재산세나 부유세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다. 귀족이나 부호가 사는 저택은 그 넓은 크기만큼 많은 창문이 있었고, 당연히 서민보다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창문을 막아 절세를 시도했다.

1월과 2월은 연말정산의 달이다. 준비가 잘 된 직장인들은 환급금을 돌려받고 오랜만에 가족과 근사한 외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어떤 직장인들은 예상치 못한 추가납부에 항의 전화를 걸지도 모르겠다. 세금을 싫어하는 것은 동서양,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모든 직장인의 공통된 마음이니까.

만약 우리에게도 창문세가 존재한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햇볕과 환기의 기능을 포기하고 과감하게 창문을 막았을까? 실제로 창문세는 귀족과 부호들만의 소소한 저항으로 끝나지 않았다. 당시 빈민들은 좁고 다닥다닥한 공동거주 저택에 살았는데, 거주하는 빈민들 수만큼 창문도 많았다. 그래서 집주인은 세금을 줄이기 위해 창문을 모두 막아버렸다. 그 결과, 빈민들은 볕도 들지 않고 통풍도 되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좁고 습기 찬 데다 위생에 대한 경각심도 없던 시절이다. 사람들은 서서히 병들고 아프기 시작했다. 세이의 법칙(Say's law)으로 유명한 프랑스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는 이런 광경을 보고 잘못된 조세정책이라 말했다. 창문세가 사람들에게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는 이유였다.

최근에도 세금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으로는 탄소세와 비만세 그리고 독신세가 있다. 탄소세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석탄과 석유 등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한국은 기업의 부담을 고려해 탄소세에 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비만세는 40여 개국이 시행 중으로, 비만을 유발하는 식품이나 품목에 부가되는 세금이다. 한국의 비만율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기에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분위기다. 독신세는 결혼하지 않은 독신자에게 걷는 세금으로,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금이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저출산 사태를 맞이한 한국에서도 도입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만, 반발 또한 만만치 않다. 경제적 여건이 부족해 결혼을 못 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걷는 것이 합당하냐는 반박이다. 이렇듯 세금은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종종 소방서나 경찰서를 지나갈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껏 내가 낸 세금이 어느 곳에 쓰였을까 하고 막연히 상상해 보는 것이다. 화재 현장에 필요한 방화복에 쓰였을까? 아니면 흉악한 범죄자를 가두는 철창을 만드는 데 쓰였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세수가 극도로 빈약하게 쪼그라든 나쁜 미래도 상상하게 된다. 공공서비스의 품질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바닥에 떨어진 나쁜 버전의 한국이다. 거리의 쓰레기를 치울 사람도 없고, 소매치기를 당해도 강도를 잡아줄 경찰이 부족하다. 그곳에선 누군가 사고로 쓰러져도 출동할 구급대원이 없다. 국가의 기능이 마비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세금은 국가의 원동력이자 혈액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세금을 내기 싫을 때마다 종종 극단적인 세상을 떠올리곤 한다.

창문세는 사라졌지만, 사회는 미래에 새로운 세금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것이 어떤 대상에 부과될지, 어떤 서비스에 부과될지는 알 수 없다. 기술의 발달로 변화의 흐름이 엄청나게 빨라졌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완전히 대체하거나 생산성을 압도하게 되면, 세금도 당연히 변화하게 될 것이다. 그 시대엔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하라는 뜻에서 운동세 같은 것이 만들어질지도 모르겠다. 그 변화를 개인이 취사선택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다가올 미래에 창문을 막고 축축하고 어두운 골방에 틀어박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은 말했다. 죽음과 세금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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