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아동청소년문학작가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 시대 사람을 등용하는 기준으로 제시된 것이다. 원래 이 말은 중국 당나라의 과거제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요즘엔 이 말을 별로 하지도 않고 사람을 판별하는데 더이상 기준이 되지도 않지만, 의미하는 바는 크다.

신(身)은 몸이다. 그 사람의 외모와 외모에서 풍기는 풍채를 말한다. 요즘에는 외모가 다 잘생겼고 쭉쭉빵빵에 S라인 몸매이니 더 말할 게 없겠다. 다만 성형을 너무 해서 자기만의 개성 있는 외모를 찾기 어려우니 그게 문제라면 문제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눈동자가 빛이 난다. 그런 사람이 드문 게 안타까울 뿐이다.

언(言)은 말이다. 말은 이치에 맞고 정직해야 한다. 허튼소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면 안 된다. 말하기는 듣기와 동전의 양면이다. 동시에 이루어진다. 오히려 말하기보다 듣기가 더 중요하기도 하다. 진정한 말하기의 달인은 청중이 원하는 이야기를 하고,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
서(書)는 글씨이다. 요즘 자기 글씨에 대해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편지 엽서가 사라지고 있고, 휴대폰 문자, 컴퓨터 자판을 통해 일하고 의사전달을 하다 보니 손으로 글씨 쓰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의외로 손글씨가 필요한 게 또 요즘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대전현충원 방문 시(2021. 6. 14)에 방명록에 쓴 글씨체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나도 보았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었다. 글씨 연습을 좀 해야 한다.

판(判)은 판단이다. 옳고 그름, 사리를 분별하는 능력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하려면 판단을 해야 한다. 로버트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도 있지 않은가? 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가치관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어떤 판단을 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가치관이 엿보인다. 신언서판 가운데 이 ‘판’이 가장 중요하다.

자기 생각이 있어야 자기 말이 나온다. 현대사회에서 각자 하는 말은 다 다른 것 같지만, 실은 한 사람이 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말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요구하는 말이다. 그런 말은 각종 광고를 통해 나타난다. 끝없이 소비하라는 말, 불안을 재촉하는 보험 상품의 말, 시종일관 땍땍거리는 뉴스 진행자의 말 등.

자기 생각을 바탕으로 자기 말을 하는 사람이 드물다. 일제 강점기 시인이었던 백석은 이런 말을 했다.

“시에서 자기의 세계를 찾을 때, 말도 또한 제 것이 생겨나는 것인가 합니다. 시에서 특히 어린이들의 세계와 관계되는 시에서는 그 말이 단순해야 하며, 소박해야 하며, 순진해야 하며, 맑아서 밑이 훤히 꿰뚫려 보이고, 다치면 쨍 소리가 나는 그런 말이어야 할 것입니다.” - ‘1956년도 ‘아동문학’에 발표된 신인 및 써클 작품들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337 쪽

인생에서 말은 아주 중요하다. 자기가 하는 말을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자기가 알아야 한다. 자기 생각이 없으면서 하는 말은 남의 말이다. 남의 말은 화를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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