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협서정문학연구위원

올해 겨울은 유난히 매서워 춥고 길었다. 거기에 비가 오다 눈이 오고, 진눈깨비 섞여 내리는 험상 궂고 이상한 날들이 유난히 많았다. 예전 ‘삼한사온’이라는 연례적인 말은 이젠 없는가 보다. 이렇게 지루하고 혹독한 엄동의 날들도 안 가는 듯하지만 흐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아 불안하게 갈팡질팡하는 사이, 벌써 갑진년이 한 달이 지났다. 슬슬 설이 다가온다. 애들은 반갑겠지만 들썩이는 물가에 한정된 가계가 빠듯하여 팍팍한 일반 가정에서는 오히려 명절이 다가오면 걱정만 더 느는 게 사실이다.

음력 ‘설’은 서기 488년 신라 비처왕(소지마립간) 시절 ‘설날을 쇠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으며, 이후 고려와 조선까지 이어졌다. 현대 새해는 대부분 양력 1월 1일인 새해 첫날에 기념하고, 일가친척들이 만나는 전통 명절 기념은 음력 ‘설’에 한다. 올해는 2월 10일이다. 설날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친척이나 이웃 어른들에게 세배를 올리는 것이 한민족 고유의 풍습이다. 놀이로는 윷놀이·투호·제기차기·널뛰기·연날리기 등 여러 민속놀이를 하며 이날을 즐겼다. 설날의 ‘설’은 ‘설다’, ‘낯설다’, ‘익숙하지 못하다’, ‘삼가다’ 등의 의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세배는 웃어른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세배를 받은 웃어른들은 아랫사람에게 답례로 세뱃돈이나 덕담을 해 준다. 설날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새로이 갈아입은 새옷을 설빔이라고 하며, '세장'이라고도 한다. 설날 차리는 음식은 '세찬(歲饌)', 술은 '세주(歲酒)'라고 한다. 새해마다 흰떡을 사용하여 떡국을 만드는 것은 새해 첫날이 밝아오므로 밝음을 뜻하고 떡국의 떡을 둥글게 써는 것은 둥근 태양을 상징하는 등 태양숭배 사상에서 유래된 듯하다. 설날에는 떡국 외에도 쇠고기 산적, 떡갈비, 식혜, 수정과 등을 먹는다. 복조리는 조리를 벽에 걸어 두는 풍습이다. 이러한 풍속은 조리가 쌀을 이는 기구이므로 ‘그해의 행운을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입춘(立春)은 24절기 중의 첫 번째로, 정월(正月)의 절기이다. 일 년 중 봄이 시작하는 날이라 하여 입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올해는 2월 11일이다. 예부터 입춘이 되면 동풍이 불고, 얼음이 풀리며, 동면하던 벌레들이 깨어난다고 하였다. 이 시기의 기상은 매년 불규칙적이어서 이때를 전후한 시기가 1년 중 가장 추운 해도 있다. 농가에서는 보리 뿌리를 뽑아 보고 그해 농사가 잘 될지 어떨지를 점치기도 하였다. 입춘이라 하여 겨울이 다 지나간 건 아니다. 입춘에는 오신채(五辛菜)를 먹는 풍속이 있었는데, 오신채는 파·마늘·달래·부추·무릇 등 다섯 가지의 매운 나물을 말하며, 한해의 첫 절기에 맵고 쓴 오신채를 먹음으로써 ‘삶의 쓴맛을 미리 깨우치고 참을성을 키우라는’ 교훈이 들어 있는 풍속이다.

입춘 때에는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이는데, 각 가정에서 대문 또는 기둥이나 곳간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이는 것을 말한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한다. 입춘첩의 유래는 대궐에서부터였다. 설날에 신하들이 지어 올린 신년축시(새해를 축하하는 시) 중 우수작을 골라 궐내의 기둥과 난간에 붙였다. 이에 일반 민간에서도 이러한 풍습을 따라 새로운 봄을 자축했다고 한다. 대문에 용호(龍虎)를 써 붙이고, 문 위에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산처럼 오래 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여라. 기둥에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 나라는 평안하고 집집마다 넉넉하여라.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부모는 천년을 장수하고 자식은 만대까지 번영하라. 등 좋은 글귀가 많다.

그렇다. 이제 흐리고 먹구름 가득하던 모진 겨울은 끝나가고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봄이 온다. 온갖 흉흉한 갈등과 모순, 대립과 비방 혐오, 너 따로 나대로, 불신과 독선, 편 가르기, 줄달음치는 이해타산에 따른 민심 현혹에 지친다. 이에 따라 팽배하는 외면과 무관심 등을 다 녹여내고 차분하며 냉정히 수분자성(守分自省) 봄맞이를 준비할 때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격려와 위로, 기대와 난망한 현실에 대한 대처방안을 제시하여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야 한다. 설레는 설과 봄을 느끼는 입춘이 다가온다. 새롭고 활기찬 봄맞이가 되도록 다 같이 심기일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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