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문학평론가

1980년대 초 진보문학운동이 신군부의 억압을 받던 공백기에, 대전 충남의 젊은 문인들이 비정기 간행물인 무크지 ‘삶의문학’을 발간하며 대안문화운동으로 그 시대적 역할을 감당했던 것처럼,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매개로 너그럽고 넉넉한 세상을 만들자‘는 정신을 고양하고자 만든 ‘삶의문학상’이 다섯 번째 수상작으로 이종인 시인의 시집 ‘사라진 후’를 선정했다.

이번 심사에는 예심을 통과한 대전, 충남, 세종의 시인 일곱 분의 시집이 본심에 올랐다. 안현심, 김혜식, 이종인, 박송이, 김혁분, 김영서, 조명희 시인의 시집을 대상으로 ‘삶의문학’ 동인인 김미영 시인과 김영호 문학평론가 그리고 전년도 수상자인 이선희 시인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본심에 오른 일곱 분의 시집은 예심에서 엄선된 만큼 모두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두 가지 기준을 다시 상기했다. 첫째, ‘삶의문학’이 견지했던 '시대적 요청에 대한 문학적 부응'을 중시한다. 둘째, ‘삶의문학’이 젊음과 패기로 ‘문단의 오랜 관행을 뛰어넘었던 도전정신’을 중시한다. 이런 ‘삶의문학’ 정신을 기준으로, 각 심사위원이 7권의 시집 중 먼저 3권을 선정해 심사범위를 좁힌 뒤 다시 그 세 권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심사위원이 3권을 종이에 적어낸 결과, 김영서(3) 이종인(3) 박송이(1) 김혜식(1) 김혁분(1)으로 취합됐다. 다시 김영서 시인과 이종인 시인을 집중적으로 논의한 결과 이종인 시인으로 결정했다. 사실 두 분 중 어느 분이 선정돼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워 심사위원들의 고심이 깊었다. 그래서 앞에서 논의한 심사기준을 다시 살펴보았다.

먼저 '시대적 요구에 대한 문학적 부응' 면에서 이종인 시인이 '전 지구적 비상사태인 생태위기'라는 시대적 과제를 일관되게 살피고, 현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생태적 참회를 촉구한 점, 한 가지 주제에 깊이 천착한 그 도전정신을 높이 샀다. 그러면서도 김영서 시인이 보여준 일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 주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함께 살려주지 못해 아쉬워했다. 그래도 김영서 시인이 2023년 ‘충남시인협회상 작품상’을 수상한 점으로 아쉬움을 달랬으며, 이종인 시인이 더 젊어 그 가능성을 북돋우기로 했음을 덧붙인다.

이종인 시인은 시집 ‘사라진 후’에서, 파국으로 치닫는 지구생태계의 심각한 위기를 경고하며, 이를 극복할 치유책을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과 직관적 영성으로 제시한다. 강물이 마르고 생명체가 죽어 뼈만 높게 쌓이는 잿빛 도시의 암울한 모습은, 인류의 여섯 번째 대멸종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모든 피조물은 천부적인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우리의 형제자매다. 하느님의 사랑이 온 우주를 창조하였으므로 우리는 비인간 존재인 피조물을 돌보아야 한다. 시인은 지금까지 지구공동체에 가한 학대를 뉘우치고 모든 피조물을 존중하길 바란다. 프란치스코 성인과 해월 최시형 선생이 보여주듯, 자연을 사랑해야(경물·敬物) 이웃을 사랑할 수 있고(경인·敬人) 나아가 하느님을 사랑(경천·敬天)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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