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 겨울궁전 장식벽화

울란바토르 시내 남쪽에 있는 ‘복드 칸(Bogd Khan) 겨울궁전’은 몽골의 마지막 칸인 복드 칸이 1893년에 착공하여 13년 만인 1906년에 완공한 건물이다. '복드 칸'의 복드란 라마교에서 생불(生佛) 또는 활불(活佛)을 의미하며, 칸(大汗)은 정치 지도자로서 복드 칸은 라마교의 최고 수장이자 정치의 지도자를 의미한다. 1905년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는 몽골에 대한 친선의 의미로 이곳에 서양식 2층 목조 건물을 지어주었는데, 복드 칸은 이 궁전에서 20여 년간 살다가 죽었다. 복드 칸의 생전에 4개 왕궁이 있었으나, 복드 칸 겨울궁전은 1926년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복드 칸 겨울궁전은 몽골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자, 라마교 유물과 복드 칸이 사용하던 유물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복드칸 궁전 평면도
복드칸 궁전 평면도

복드 칸 겨울궁전의 입장료는 1만 5000투그릭(한화 6000원)인데, 입구는 몽골 전통가옥인 게르 모양이다. 입장권을 내고 게르로 들어가서 반대편으로 나가 모두 3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겨울궁전은 7개의 라마교 사원과 목조 2층 왕궁 등 20여 개의 건물로 이루어졌는데, 특히 두 번째 문은 복드 칸의 즉위를 기념하여 '평화의 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었다고 한다. 복드 칸 겨울궁전의 라마교 7개의 사원마다 불화, 불교 기록, 불상을 전시하고 있지만, 내부는 사진 촬영을 일체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거의 동시에 지은 라마사원의 불상이 각각 다른 모습인 것이 다소 낯설고, 라마사원의 문자나 문양은 티베트 문자와 유목인이던 몽골인의 전통을 반영하여 곰, 사슴 등의 형상이 특징이다.

3개의 문
3개의 문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티베트로 들어온 불교는 전래의 토속 종교와 융합하여 티베트 특유의 불교를 형성하여 바즈라야나, 밀교(密敎) 혹은 라마교(Lama)라고 했다. 1368년 원 제국이 명 태조 주원장에게 쫓겨 만리장성 북쪽에 북원(北元:1368~1388)이라고 했는데, 알탄 칸(順義王: 1507~1582)은 몽골족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하여 1578년 티베트불교의 겔루파 수장인 ‘소남갸초’에게 ‘달라이 라마’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라마교를 국교로 삼았다. 몽골어 달라이(ДАЛАЙ)는 ‘바다’라는 뜻이고, 라마(ЛАМ)는 ‘승려’라는 뜻이니, 결국 ‘바다 같은 스승’이다. 이후 티베트불교의 최대지도자를 달라이 라마라고 하여 대대로 이어오고 있는데, 라마교가 국교가 된 이후 달라이 라마는 왕보다 더 큰 권력을 갖게 되면서 종교와 정치를 관장하는 티베트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두번째 문
두번째 문

복드 칸 겨울궁전의 전면에 배치된 라마 사원 뒤편으로 들어가면, 러시아 니콜라이 2세가 지어준 서양식 2층 목조 건물이 복드 칸의 궁전이다. 본래 티베트인이었던 복드 칸은 1869년 청나라 쓰촨성 티베트족 자치주인 리탕현에서 태어나 5세 때인 1874년 몽골의 니슬렐 후레, 즉 현재의 울란바토르로 이주했는데, 이후 몽골의 티베트불교 지도자인 복드 칸이 됐다. 당시 몽골의 상황은 내몽골은 후금이 건국할 때부터 원나라 제국의 옥새를 후금에게 바치고 청의 숭덕제를 대칸으로 모셨으나, 외몽골은 청에 대항하다가 멸망했다. 1911년 7월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외몽골은 복드 칸을 대칸으로 추대하고 독립을 선언했는데, 1915년 6월 중화민국은 복드 칸을 지지하는 러시아와 협의 끝에 러시아 국경 도시인 캬흐타에서 몽골의 자치를 인정하는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붕괴하자 태도를 바꿔서 외몽골을 점령하여 항복을 받았다. 몽골은 러시아와 청, 중화민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가혹한 수탈로 경제가 파탄에 빠지자, 복드 칸은 1919년 몽골 인민혁명당을 창설하고 독립운동을 벌였다.

한편, 1차대전으로 생활이 날로 힘들어지자 1917년 2월 러시아 민중은 폭동을 일으키고 황제 니콜라이 2세를 폐위했지만, 그해 10월 볼셰비키가 다시 소비에트 혁명을 일으켰다. 그러자 집권한 볼셰비키에 저항하는 백군(白軍)과 볼셰비키를 지지하는 적군(赤軍)이 내전을 벌였는데, 흰색은 본래 왕당파의 색깔이 흰색이었고, 볼셰비키파는 이에 반대하여 붉은색을 상징으로 삼았다. 내전 중이던 1920년 9월, 백군파인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남작이 몽골에 들어와서 복드 칸과 함께 1921년 중국군을 몰아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였던 수흐바타르가 유목민을 선동하여 몽골인민당을 창설하더니, 러시아 적군파의 지원을 받아 중국군 잔당과 백군파를 추방하여 후레(울란바토르)를 점령했다. 수흐바타르가 복드 칸에게 인민 정부의 필요성을 주장하자, 복드 칸은 그에게 정권을 이양했는데, 복드 칸은 1911년부터 1919년까지 몽골 황제였고, 몽골의 독립에 노력하여 몽골인의 존경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1924년 죽을 때까지 국가 주석으로 있었고, 수흐바타르는 실세 국방부장관이 됐다.(자세히는 2024. 3. 20. 수흐바타르 광장 참조)

동물문양과 조각
동물문양과 조각

복드 칸 겨울궁전에는 복드 칸이 사용했던 옥좌, 침대,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에게 받은 부츠 등이 있고, 왕비가 입었던 진주로 수를 놓아 만든 옷도 있다. 또 동물을 좋아하던 복드 칸이 여러 나라에서 선물받은 동물 박제가 많은데, 특히 몽골의 중앙지역 영주가 복드 칸에게 선물한 표범 150마리의 가죽으로 만든 몽골 전통가옥인 게르가 볼만하다. 러시아 니콜라이 2세는 오스만제국의 술탄 압둘메지트 1세에게 곰 2마리의 가족을 선물하여 지금도 이스탄불의 돌마바흐체 궁전 대접견실 바닥에 전시하고 있다. 또, 전시실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엄청난 크기의 세밀화는 몽골인의 주거, 복식,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이라크에서 발달한 모술파의 영향을 받아 매우 섬세한 세밀화는 외국 사신의 접견, 선물행렬, 병사들의 체력단련, 싸움에 출정하는 병사들을 배웅하는 여인들, 라마사원에서의 예불, 라마승들의 토론, 게르 짓기, 말젖 짜기, 낙타젖 짜기, 소싸움, 말똥으로 고기 굽기, 양털 고르기, 가축 잡기, 말똥 줍기, 아이락 축제의 산해진미,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들, 구토할 때까지 술 마시기, 술 마신 후의 폭력적인 술주정, 여성들이 서로 머리채를 움켜쥐고 싸우는 모습 등 몽골인들의 생활 모습이 사실적이고 해학적으로 그려져 있다. 여담으로 복드 칸은 첫째 부인 첸딘 돈독둘람과 7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으나, 1923년 47세로 죽었다. 그 후 유부녀인 치엔필과 재혼하고 치엔필은 게네필로 개명했지만, 1년 만에 복드 칸이 죽고 군주제가 폐지되자 치엔필은 고향으로 가서 전남편 루브산담바와 재결합했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겨울궁전 중심사원
겨울궁전 중심사원
한자, 몽골문자, 티베트문자 편액
한자, 몽골문자, 티베트문자 편액
흑인 나한상
흑인 나한상
라마교 부처상
라마교 부처상
인도 전통의 인드라 여신
인도 전통의 인드라 여신
복드칸과 왕비 상
복드칸과 왕비 상
니콜라이 황제가 지어준 궁전
니콜라이 황제가 지어준 궁전
표범가죽 150개로 만들었다고 하는 왕의 게르
표범가죽 150개로 만들었다고 하는 왕의 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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