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국
상무·충남취재본부장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면 갖게 되는 거부감은 기존 제도가 안겨 주는 익숙함을 깨트리는 낯섦과 불편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머릿속 평온을 뒤흔드는 낯설고, 불편한 경험은 제도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져 여러 가지 후폭풍을 낳기도 한다.

더구나 거의 백 년을 사용해온 익숙함을 국민이 포기해야 하는 변화라면 이것은 단순히 변화를 넘어 개혁(改革)이다.

개혁을 단행한 후 문제가 발생하면 진퇴양난이 된다. 이미 시간적 경제적 비용을 쏟아 부은 상태에서 다시 원 상태로 되돌릴 수도 없으니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좌충우돌 속 국민의 거부감과 반발을 잠재우며, 동시에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근자에 정부가 국민에게 변화를 요구한 두 가지 개혁, 즉 2010년에 시행한 보행자 우측통행과 올해 시행한 도로명 주소 사업이 화두(話頭)다. 두 가지 개혁은 도입 이후 사회상을 통해 개혁에 임하는 정부의 자세가 여느 것과는 분명히 달라야 함을 웅변하고 있다.

먼저 시작한 우측통행은 아직 정착이 요원하다. 일제시대부터 좌측통행을 생활의 원칙으로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이 약 백 년간 사용한 습관을 바꾸려니 머리가 허락을 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입학을 하면서부터 선생님의 회초리 아래 다져진 원초적 생활습관이니 그럴 만도 하다. 좌파에서 우파로, 우파에서 좌파로 사상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좌에서 우로 이동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횡단보도는 물론, 지하철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좌, 우측통행이 섞여 충돌하니 우측통행 시행 이전보다 되레 더 혼란스럽다. 좌측통행을 고수하는 사람과 새로운 제도를 수용한 우측통행자가 섞이고, 좌 우측통행에 대한 개념 정립조차 안 된 무지한 사람까지 뒤엉켜 움직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정부도 더 이상 관심이 없는 것인지, 잘 정착됐다고 판단한 것인지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번 카드회사의 개인정보 유출 파문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며 직접 정부에 항의가 이어지지 않을 뿐이지 좌우의 충돌에서 겪는 국민의 불편과 혼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와중에 2014년부터 기존 지번 주소체계를 대신해 도로명주소가 시작됐다. 국민은 또 한번 엄청난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셈이다. 좌측통행과 마찬가지로 한 세기 동안 이용한 지번 주소체계를 대신해 도로에 이름을 부여하고, 건물에 번호를 부여한 선진국 스타일의 새 주소가 등장하니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세계 선진국이 모두 사용하는 주소 체계라고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처럼 도시계획 자체가 부실한 곳이 많은 국가에서 도입하기에 적절한 것이었냐는 의문과 더불어 좀 더 유예기간을 가져야 했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아예 예전 주소 체계로 돌아가자는 목소리마저 등장한다.

시범 기간도 아니고, 시행에 들어간 이 시점에 자기 집 주소를 모르는 사람이 절반에 이를 정도로 사회가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준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종교처럼 몸에 밴 좌측 습관을 갑자기 우측으로 바꿔야 하고, 머릿속에 바둑판처럼 가지런히 정돈된 지번 주소를 털어내고,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한 머릿속을 새 주소로 채워야하는데, 이러한 개혁의 정착을 쉽게 생각했다면 그것부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습관과 의식을 바꾸려는 개혁이라면 적어도 그에 걸맞은 철저한 검토와 계획 수립이 수반되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마땅하다. 과거 운 좋은 경험을 좇듯이 잘 준비했으니 잘 될 것이라는 정도의 막연한 기대였다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최근 두 가지 경험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국민을 상대로 한 개혁은 준비부터 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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