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의 재활용 자원 수집 어르신 돌봄 정책을 응원하며

이인회
사회부장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추진하는 정책들은 혹은 거창하고 혹은 수수하다. 판을 크게 벌려 놨으니 주로 거창한 정책을 국민의 귀에 인이 박히도록 미는 게 상례다. 졸작인지 역작인지에 대한 평가는 논외로 치고 열의에 충만한 정권의 4대강 사업이 그랬고, 창조경제가 그렇다. 대전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와 도시철도 2호선, 세종의 명품 행정도시 착근, 충남의 3농 등이 현안이라는 간판을 달고 지역 사회의 관심과 걱정을 양분 삼아 광합성 중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거창하다고 그 끝이 창대한 것도 아니고 수수하다고 그 끝이 미약한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수수하지만 ‘느낌 있는’ 대전시의 정책 하나가 퍽 의미 있게 다가왔다. 재활용 자원 수집 어르신 실태조사 결과와 함께 내놓은 ‘사고 예방과 나눔·섬김 문화 확산을 위한 돌봄 기본계획’이 그것이다. 민망한 노릇인 것이 이번 실태조사가 전국 최초란다. 위정자들이 허구한 날 ‘복지’, ‘복지’ 강조하는 나라에서, 기초노령연금이라도 시행하고 있는 나라에서, 고독과 생활고에 짓눌린 채 가장 밑바닥에 야윈 살갗을 기댄 채 살아가는 노인들에 대한 기본 조사조차 손대지 않았다니 당최 누구를 위한 노인 복지인지 되묻고 싶다.

대전시가 폐지를 수집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들에게 한 줌이나마 햇살을 손에 쥐어주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는 점은 그래서 더 평가할 만하다. 더위에 지쳐 투레질이 튀어나오던 지난해 여름의 시린 풍경 하나가 덧대져 고맙기도 하다.

언뜻 봤을 땐 손수레가 절로 움직이는 줄 알았다. 빈 박스를 더께더께 쌓아올린 수레가 내 쪽으로 굴러왔다. 당연한 이치지만 수레 뒤에 숨은 인력(人力)도 조금씩 모습을 보였다. 뼈만 앙상해 입은 왜바지가 유독 펑퍼짐하게 느껴지는, 쪽진 백발이 땀에 밀려 헝클어진, 등이 유난히 굽은 왜소한 할머니의 숨소리도 함께였다. 그렇게 할머니와 횡단보도에 나란히 섰다. 근처 고물상으로 돈 만들러 가시는가 싶어 손수레를 끌어드리겠노라고 하니 주름 가득한 얼굴을 힘없이 주억이셨다. 장정이 끌기에도 꽤 무게가 나가는데 어찌 여기까지 오셨을까, 가슴이 시큰했다. 100미터 남짓 손수레를 끌고 애써 속으로 숨을 골랐다.

땀으로 범벅된 몰골을 보시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시던 할머니의 고단한 실루엣이 아직 또렷하다.
대전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재활용 자원 수집 어르신은 636명(남 223명, 여 413명)이다. 이중 76∼84세가 전체의 45%를 차지했다. 44%는 독거노인이고 전원 차상위 계층(83%)이거나 기초생활수급자(17%)라는 점은 이 분들의 발품이 생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방증이다. 누군가에는 어머니를, 누군가에는 할머니를 연상시키는, 그러나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1㎏에 고작 150원을 쥐어주는 폐지로 여생을 담보하는 분들에게 우리가 해드릴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궁리하다 재활용의 날을 떠올렸다.

집에 쌓아두면 골칫거리인 폐지며 공병 따위를 매주 배출한다. 하찮은 금액일지 모르지만 재활용품 판매대금을 ‘폐지 줍는 노인’들을 보듬는데 보태면 어떨까 싶다. 십시일반이라고 기금 형태로 운용하면 꽤 요긴한 밑천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다. 착한 사람들은 기꺼이 제 지갑을 열어 남을 돕는데 그저 버려야 하는 재활용품이 나눔을 실천하는 티끌이 된다면 값어치 있는 배려라고 본다.

그렇다고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좋은 아파트 선정 기준으로 삼거나 나눔 실천 인증을 한다거나 동참을 이끌어내는 당근이 필요할 터다.

대전은 지금 사회적자본 확충이라는 신바람을 내고 있다. 신뢰와 소통에 근거한 아름다운 동행을 착근시키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이 펼쳐지고 있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선량한 마음이 사회적자본 확충의 모태다. 함께 나누는 작은 실천이야 말로 사회적자본이 충만한 도시, 대전의 긍지이자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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