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
충남본부장

2002년 여름은 참 행복했다. 벌써 12년 가까이 흘렀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기만 하다. 축구 동호인은 물론 온 국민의 눈과 귀는 월드컵에 집중돼 있었다. 우리선수들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서울시청 앞 광장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 광장, 월드컵 경기장 등에 수 백 만의 응원인파가 몰려 응원가와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너도나도 빨간 티셔츠를 입고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함께 삼삼오오 태극기를 손에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조별 예선을 통과해 16강에 진출하고 8강에 이어 4강까지 거침없이 치고 올라갔다. 4강에 안착하자 축제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결승 진출을 다투는 준결승전에서 패해 3·4위전으로 밀려났지만 축제분위기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이어 벌어진 3·4위전은 승부를 떠나 축제 분위기였다. 터키에 이어 4위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누구도 불만을 토로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선수들도 터키 대표와 운동복을 바꿔 입었고 관중들은 대형 터키 국기를 흔들며 경쟁상대인 터키 선수들을 응원하는 훈훈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2002 월드컵은 박지성이라는 걸출한 스타를 발굴해 냈고 그는 축구의 본고장 영국 프리미어리그 최정상 팀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우리 선수들의 해외진출이 봇물을 이루는 등 한국축구가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얼마 전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남자 쇼트트랙에서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가 금메달을 휩쓸자 빙상연맹을 비롯한 관련 단체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안 선수가 러시아로 귀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안 선수의 귀화는 빙상계 파벌싸움의 산물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다. 고질적인 파벌이 횡횡하면서 선수선발이 실력을 기준으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대통령까지 나서 안 선수의 귀화에 문제가 없었는지 조사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선수가 처음부터 러시아로 귀화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1년 정도 전지훈련지로 생각 했으나 러시아 측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구애를 하면서 결심을 굳히게 됐다고 한다. 소치올림픽에서 안현수는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쓸어 담으며 러시아의 빙상 영웅으로 등극했다.

안현수를 러시아로 내몬 우리의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소치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쇼트트랙 대표 팀은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수확했지만 모두 여자팀에서 나왔고 남자는 노메달의 치욕을 감수해야 했다. 쇼트트랙 남자 노메달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이후 12년만이라고 한다. 실력보다 내편, 내 사람 위주로 선수를 선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이다.

2014 브라질월드컵이 80여일 앞으로 다가 왔다. 히딩크 감독이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를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올려놓고 전 국민에게 감동을 안겨줄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전문가들은 실력위주의 선수선발과 탁월한 선수기용 능력을 꼽는다.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기준대로 선수를 선발했다. 또 외부의 간섭이나 우려를 뿌리치고 코치진과 함께 마련한 훈련일정에 따라 선수들의 컨디션을 끌어 올렸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월드컵 대표팀이 사령탑 홍명보 감독의 진두지휘 아래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홍 감독은 ‘원 팀(one team) 원 스피릿(one spirit) 원 골(one goal)’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선수들을 담금질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벨기에, 알제리, 러시아와 함께 H조에 편성됐다. 축구 전문가들은 무난한 조 편성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대표팀은 오는 5월 말경 서울에서 최종 평가전을 치르고 최종 엔트리를 발표할 예정이다. 투명하고 공정한 선수 선발로 히딩크 감독의 애제자인 홍 감독이 스승의 영광을 재현하길 기대해 본다. 2014년 여름 다시 한 번 2002년의 감동과 행복을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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