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국
본사 상무/총괄국장

부끄럽다. 어른인 것이. 미안하다. 어른인 것이. 지켜주지 못한 것이. 제때 구해주지 못한 것이. 아름다운 꿈 펼쳐보지도 못하고 떠나게 한 것이. 그리고 정말 슬프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과 울부짖음에 온 사회가 눈물에 젖고, 지키지 못한 어린 생명에 대한 미안함에 이 땅의 어른들이 고개를 숙인다. 모두가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이 되어 흐느끼고, 함께 눈시울을 적셔 보지만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는 참담한 현실 앞에 분노와 원망은 한이 된다.

수학여행 길에 오른 꿈 많은 소년 소녀들을 사지로 내몬 이번 사고는 어른답지 않은 어른들이 만들어낸 인재(人災)다. 돈만 앞세우는 어른들의 과욕이, 본분을 망각한 무책임한 어른들이 빚어낸 참사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의무와 책임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승무원과 달리 승객은 의무를 다 하기 위해 배라는 작은 사회의 질서를 준수하고 있었다. 배가 기운 상황에서도 학생들을 비롯한 대다수 승객은 안내 방송에 따라 배 안에서 차분히 구조를 기다렸다.

‘움직이면 더 위험하니 선내에서 기다리라.’는 안내 방송은 결과론적으로 이들을 위험 속으로 내몬 ‘죽음의 전령’이었지만 많은 승객, 특히 선생님과 학생들은 선상의 규칙을 존중하며, 가장 승객답게, 선생님답게, 학생답게 본분을 지켰던 셈이다.

안내 방송에 따라 선생님은 학생들의 무질서한 이동이 자칫 기울어진 배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판단 아래 학생들에게 움직이지 말 것을 주문했을 것이다. 제대로 판단하지도 못한 채 구조의 기회를 놓쳐버리고, 탈출을 돕기는커녕 가장 먼저 배를 빠져나가는 선장과 승무원의 추악한 모습 따위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배의 위기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안내방송은 대다수의 안전 보장을 위해 승객들이 따라야 할 선상의 규칙이자 질서이기 때문이다.

학생도 선생님 앞에서 마지막까지 학생다웠음을 알 수 있다. 선생님의 인솔 아래 학생들은 구조를 기다렸으며, 모두의 안전을 염두에 둔 선생님의 지도는 마지막까지 존중되고 있었다. 정말 학생답게 제자답게.

선생님다운, 학생다운 행동은 어른들의 어른답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아쉽게도 모두 묻혀버렸다. 정말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생님답게, 학생답게 승객의 안전을 위해 마지막까지 승무원의 안내를 믿고 따랐는데, 선장과 승무원들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채 선장답지 않게, 승무원답지 않게 무책임하고, 비겁한 행동으로 화를 초래했다.

각자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소홀히 하며, 권리와 이익에만 몰두하는 파렴치한 어른들이 이끌어가는 세월호의 결과가 그러하듯, 세월호의 어른들이 이끌어가는 사회는 언제든지 사고와 억울한 희생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이런 참담한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발생한 모든 사고, 인재는 사회 구성원 각자에게 주어진 본분의 망각에 있었다. 많은 생명을 잃은 이번 사고를 교훈삼아 모든 어른이 본분에 충실해 안전과 신뢰가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확실한 재난대응체계도 시급하다. 부실한 관리감독이 부른, 사악한 어른들의 욕심이 부른 대형 사고를 경험할 때마다 대책을 노래 부르면서도 막상 사고가 터져 또다시 아까운 생명을 잃게 되지만 원칙도 방법도 없는 듯 허둥지둥하는 어른들의 모습, 특히 공직자, 정부의 모습은 보기조차 민망하다.

이 땅의 어른으로서 소중한 생명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그리고 더불어 희망한다. 본분을 망각한 어른답지 않은 어른들로 인해 우리 아이들이 덧없이 희생되는 어이없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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