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회
사회부장

온 국민을 비탄의 바다에 빠뜨린 세월호 침몰 참사가 발생 한 달을 넘어섰다. 대한민국의 시계를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언저리에 멈춰 세우고 국정은 물론 갑남을녀의 일상까지 애도와 슬픔, 분노와 좌절로 담보 잡은 희대의 비극은 이제 천인공노할 악역의 이름을 하나 둘 ‘엔딩크레딧’에 올린 채 팽목항 앞바다에 박제되는 느낌이다.

그러나 비극이 절대 회멸된 것은 아니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십 수 명이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으로 남았고 선체 인양 등 뒷수습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세월호 참사를 국민들의 뇌리에 재생시킬 것이다. 한 배를 탔던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그 가족들이 겪고 있는 가늠 불가의 고통은 시간을 약으로 삼지 못할 크기다. 직·간접 책임자 처벌을 위한 검찰수사가 한창이고 대통령이 나서 안전행정부를 혁파하고 해경을 해체하는 고강도 쇄신을 단행했다. 비극을 단죄하는 도돌이표 안간힘을 바라보며 이 비극의 시나리오 작사는 누구이고 감독은 누구이며 주연은 누구인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누구의 잘못일까? 대형 참사에 신물 나게 결기를 녹인 관전자들은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세월호 대참사를 어떻게 기억할까? 라고 자문해 본다.

구태여 ‘냄비근성’을 들먹이지 않아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잊고 싶은 기억을 먼발치로 밀어내려 애쓰기 마련이다. 그래도 이토록 처참한 대가를 치렀다면 반드시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저기서 기본부터 지키고 남을 배려하자고 독려하는 기운이 이 시점에서 제일 와 닿는다.

“아무리 완벽한 매뉴얼을 만들고 안전교육을 강화하자고 호들갑을 떨어도 쇠귀에 경 읽기라고 봅니다. 국민들이 이를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느냐는 문제가 그렇죠. 남을 탓하기는 쉽지만 정작 자신은 기본을 지키는지 되돌아 봐야 해요.”

“아파트 주차장 한 번 가 보세요. 주차장이 텅 비어 있어도 가로 주차 해 놓고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잖아요. 주차하는 수준만 봐도 나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심이 보입니다. 도로 위는 어떤가요? 방향 지시등 무시하고 끼어드는 운전자, 신호 무시하고 달리는 운전자, 꼬리 물기로 다른 방향 차량 운행을 방해하는 운전자 등등 기본을 지키지 않는 사람, 배려심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최근 이런 저런 자리에서 만난 이들이 ‘세월호 그 후’에 덧댄 논평이다. 참사가 터지면 화살은 불을 머금고 정부로 향한다. 당연한 이치지만 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은 법이 처벌하기 전 민심의 단두대에 오른다.

나도 크고 작은 사고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가정법의 아량은 없다. 그렇다면 난 안전을 생활화하고 기본을 지키고 있는지 냉정하게 평가하는 데도 인색하다. 수수한 기본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수수한 안전을 준수할 리 만무하다. 무시는 재앙의 불씨가 될 수 있음을 상기할 리 만무하다. 안전을 아무리 강조해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고는 터진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안전불감증을 탓하는 순간에도 지하철이 추돌했고 대형 화재가 발생했으며 준공을 앞둔 건물이 기울어졌다. 자신의 맡은 바 본업에 충실했다면, 가장 기본적인 매뉴얼을 준수했다면 귀찮다는 생각보다 하찮아 보이는 소소한 것들을 챙겼다면, 눈 가리고 아웅 하지 않았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가 아니었을까 공연히 허공을 향해 타박을 토해본다.

천재지변이 아닌 한 인간 사회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모두 인재다. 물론 내 의지와 무관하게 사고를 당하는 일도 적잖지만 스스로 기본을 지키고 남을 배려하며 귀에 인이 박히게 들어온 안전을 생활화하는 게 사후약방문을 쓰지 않기 위한 상책이다. 세월호의 유언(遺言), 그것은 기본을 지키는 도리의 실천이 아닌가 싶다. 제 아무리 고장 난 국가안전망을 온전하게 수선해도 기본을 이탈한 안전까지는 지켜줄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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