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 충남본부장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일본군이 요구에 거절하는 처녀를 죽여 인육을 삶은 뒤 이를 고깃국이라고 속이고 위안부들에게 먹이기도 했습니다.” “하루에 수 십 명의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고 너무나 힘들어 거부하면 폭행하고 칼로 위협해 짐승 같은 욕구를 채우기도 했습니다.” 적게는 13세의 어린나이에 끌려가 차마 형언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참담한 고통을 당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다.

1923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19세의 나이에 만주로 끌려가 모진 고통을 겪으면서 ‘성노예’ 생활을 해야 했던 위안부 피해자 배춘희 할머니가 지난 8일 별세했다. 배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7명 중 생존자는 54명으로 줄었고 이중 49명은 국내에 5명은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배 할머니가 향년 91세였던 것처럼 대부분의 피해 할머니들이 고령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더 이상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을 정부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청취하고 기록할 수 없을지 모른다.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백서’를 발간키로 했다고 한다. 오만하고 몰염치한 아베 내각의 고노담화 검증결과 발표를 지켜 본 정부가 백서의 필요성을 절감한 듯하다. 늦었지만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일본군 ‘위안부 백서’는 위안부 문제가 처음 제기됐던 1992년 범정부 대책반 차원에서 완전한 형식의 백서가 아닌 중간보고서 형태로 작성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정부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조사하고 백서로 만든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를 조사했던 것으로 이번 고노담화 검증결과 발표에서 밝혀졌다. 일본은 당시 스스로 위안부 피해자 실태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확인됐고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 증언을 청취했다. 이를 근거로 일본군 위안부는 강제로 동원됐으며 일본군에 의해 운영됐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를 바탕으로 고노담화가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본이 쉽게 입장을 번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구실을 찾아 고노담화의 취지를 훼손했다. 스스로 조사하고 발표한 담화조차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이번 검증논란에서 보듯이 일본은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이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번 사태가 잘 수습된다 해도 일본이 언제 또다시 위안부를 부정하고 호도하려 할지 믿을 수 없게 됐다.

철저한 조사와 체계적으로 정리된 백서 발간이 절실한 이유다. 일본이 더 이상 위안부 문제를 부정할 수 없도록 같은 시대를 살았던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증언과 증거를 확보해야한다. 먼저 생존해 계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어디로 끌려갔는지를 명확하게 조사해야한다. 또 피해자들이 어디서, 어떠한 환경에서 얼마 동안 모진 고통을 참아내야만 했는지 상세하게 기술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체계적인 증거수집도 필요하다.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는 증거와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는 증거를 수집해야한다. 이와 함께 일본은 물론 필리핀, 중국, 네덜란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증거들도 찾아야한다.

일본은 믿을 수 없다. 주한 일본 대사와 관방장관은 “고노담화 검증결과 발표로 고노담화의 신뢰성은 변하지 않을 것, 고노담화를 계승할 것“이라고 사전에 입장을 밝혔으나 막상 발표 내용을 보면 위안부 강제동원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또다시 침소봉대해 실체적 진실을 부정하려할 것이 분명하다.

일본의 고노담화 검증 논란이 우리에게는 기회일 수 있다. 부산스럽지도 않고 소란하지도 않게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벽하게 위안부 문제의 진실과 일본의 책임을 입증할 수 있는 백서가 만들어 지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