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운 충남본부 취재부장

80년대 씨름의 인기는 절정을 구가했다. 당시 프로야구도 있고, 프로축구도 있었지만 씨름의 인기는 양대 스포츠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씨름의 인기 그 한 가운데 이만기 장사가 있었다. 당시 씨름판에는 내로라는 스타급 선수들이 즐비했다. 이만기를 비롯해 홍현욱, 이준희, 손상주, 이봉걸, 최욱진 등의 걸출한 장사가 용호상박의 경쟁을 벌였다. 백두장사, 한라장사, 금강장사, 태백장사로 나눠 체급별 장사를 가린 뒤 각 체급별 장사들이 천하장사 자리를 놓고 왕중왕전을 펼치는 형태로 진행됐다.

즐비한 씨름 판의 영웅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이만기였다.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였지만 이만기는 기술씨름을 앞세워 파워씨름을 구사하던 다수의 거구 장사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고 모래판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처음에 그가 걸출한 스타급 선수들을 제치고 천하장사로 등극했을 때는 다수의 팬들이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듭되는 그의 승승장구에 모두들 실력을 인정했고 그의 팬이 되었다.

스타급 선수들의 경기 중에도 가장 재미있는 경기는 이만기와 이봉걸의 맞대결이었다. 이봉걸은 신장 205㎝의 거구로 당시 씨름선수 가운데 최장신이었다. 누구라도 그와 맞붙으면 어깨 밑으로 깔렸다. 이봉걸이 큰 키를 앞세워 상대를 들어 올리면 저항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 이봉걸이지만 이만기와 맞붙으면 번번이 모래판에 내동댕이쳐졌다. 2m가 넘는 장신이 이만기의 기술에 걸려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 팬들은 씨름의 묘미를 맛봤다. 그러면서 씨름과 이만기에 열광했다.

이봉걸은 이만기를 스타로 만들어준 일등공신이었다. 최근 이 나라 정치판에서 복지문제를 놓고 벌이는 지자체장들의 설전을 보노라면 이만기와 이봉걸의 씨름경기가 떠오른다. 복지논쟁에서 거물의 홍준표 경남지사가 신예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연일 참패를 당하고 있는 모양새가 이만기 앞에만 서면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마는 이봉걸을 보는 듯하다. 홍준표 지사가 허점을 보이는 틈을 타 여지없이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이재명 시장이 단숨에 스타급 정치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보편적 복지를 포퓰리즘으로 규정한 홍 지사가 도내 학생들에 대한 무상급식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무렵 이 시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무상 교복과 무상 산후조리를 시행하겠다고 맞불을 피웠다. 그러면서 “4대강 사업 같은 불필요한 국가사업을 시도하지 않았으면 지급보다 몇 곱절 여유를 가지고 갖가지 복지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욱이 전임시장이 재임 중 7000억 원 넘는 부채를 만들어 자신이 그것을 넘겨받았지만 취임 후 5000억 원 이상을 변제한 사실을 밝히며 예산의 효율적 집행만으로 복지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전 국민 앞에 공언하기까지 했다.

진주의료원을 폐업하며 국민적 지탄을 받았던 홍 지사는 학교 무상급식 중단까지 선언해 연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 시장이 나타나 복지 확대를 발표하며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다. 흡사 이봉걸이 허점을 보이는 틈을 타 잽싸게 그의 다리 밑으로 파고들어가 기술을 걸어 넘어뜨리고 마는 이만기를 보는 듯하다. 여권의 거물로 대권 잠룡 중 한 명인 홍준표 지사가 정치판 무명의 신예 이재명 시장에게 연패를 당하고 있는 꼴이다.

경남도와 성남시의 복지 방향을 비교하면 국민들은 많은 것을 깨달아 가고 있다. 7000억 원이 넘는 부채를 감당 못해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 선언 직전까지 갔던 성남시가 불과 수년 만에 국민 모두가 부러워하는 복지 선진 도시로 변모하고 있으니 이제는 “돈 없어서 복지 못 하겠다”라는 지자체장들의 말이 곧이들리지 않게 됐다. 복지를 보는 눈, 복지문제를 풀어가는 해법의 차이로 대권가도를 줄달음치던 한 거물 정치인은 나락으로 접어든 반면, 국회 문 조차 밟아보지 못한 신예 정치인은 새로운 대권 후보로 급부상 하며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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