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이사/충남본부장 이 영 호

“유럽 여러 국가들의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구도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수는 없다.” “우리 독일인들은 나치 시대에 행해진 일들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주의 깊고 민감하게 대응해야 할 책임이 있다.” “독일에 있는 유대인 계열 학교와 유치원을 아직도 경찰이 경비해야 하는 현실이 부끄럽다.”

“사람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희생자들과, 우리 자신,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독일은 과거 벌어진 사건에 대해 영구적인 책임이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2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앞두고 발표한 영상메시지와 3일 2차 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인 다하우에서 개최된 수용자 추모식에 참석해 과거사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2005년 독일 총리에 취임한 앙겔라 메르켈은 기회가 있을 때마나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고 용서를 구했다. 2007년 9월 유엔총회에서는 독일의 역사적 과오에 대해 사과했고, 다음해 3월 이스라엘 의회 연설에서도 그는 홀로코스트는 독일인에게 큰 수치라며 이스라엘은 물론 전 세계인에게 공개적으로 사죄했다. 또 2013년 8월에는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2차 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인 다하우 추모관을 방문해 “수감자들을 생각하면 깊은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반성했다.

“전후 우리 일본은 지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깊이 반성하면서 우리의 길을 걸었다. 지난 대전에서 우리 행동이 아시아 여러 국가의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긴 사실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 대한 견해는 역대 일본 총리들이 표명했던 견해와 같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9일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한 내용 중 과거사와 관련해 언급한 부분이다.

아베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해 “여러 국가 국민들에게 고통 줬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식민지배와 침략’이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피해갔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언급 조차하지 않았다.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요구해 온 주변국은 물론 국제사회와 역사학자들의 기대에도 크게 못 미쳤다. 아베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스스로 날려 버렸다.

이번에는 일본의 '과거사 역주'를 지켜봐 온 세계 사학자 187명이 아베 총리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더 이상 왜곡하지 말고 인정하라는 성명을 냈다. 역사학계의 궐기다. 세계적 석학으로 인정받고 있는 동아시아 전문가들의 집단 행동이다. 이미 검증된 역사적 사실을 더 이상 부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변 국가들과 국제사회가 아베 정권에게 통렬하고 진심어린 반성과 사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책임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을 바꾸고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우며 합리화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에게 과거사 문제로 시비를 거는 국가나 단체는 거의 없다. 그는 일관된 기조를 유지하고 스스로, 그리고 진심으로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끊임없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메르켈이 가슴속에서 우러난 진심어린 사과를 한다면 아베는 득실을 따진 후 머리로, 메르켈이 성의를 다해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아베는 현실을 모면하기 위해 마지못해, 메르켈이 무조건적으로 사과한다면 아베는 국내 정치상황 등을 고려한 계산된 사과를 하고 있다. 우리는 말한다. 메르켈 반만이라도 닮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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