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운/충남본부 부국장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리,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오스트리아의 그라츠, 독일의 뉘른베르크, 캐나다의 애드먼트와 몬트리올, 미국의 유진과 뉴욕 등은 세계적인 인권도시들이다. 이들 도시 대부분은 과거 군사독재정권이나 극단적 민족주의 집단에 의해 무고한 시민들이 대량 학살을 당했거나 참혹하게 인권을 유린당한 역사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에서는 80년대 신군부에 의해 양민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뼈아픈 역사를 지닌 광주가 대표적 인권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흔히들 광주하면 우선적으로 예술도시라는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국제적으로는 인권도시로 더욱 알려져 있다. 특히 아시아 권역을 대표하는 인권도시를 꼽으라면 광주가 지목된다. 광주는 ‘인권도시 국제협력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의 대표적 인권도시들과의 교류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인권도시는 아픈 과거를 간직했다는 동질감을 갖고 연대를 시작했고, 다시는 그런 아픈 역사를 재현하지 말자는 데 뜻을 같이하고 있다. 더불어 시민 누구나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공조하고 있다. 그래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을 상설화하고 있고, 시민의 역량 강화를 위해 시민참여 예산제를 도입하는 한편 범죄 퇴치, 소외계층의 보호 등에 앞장서고 있다.

인권도시들은 한결같이 인권 시책을 추진하는 전문 기관을 두고 있고, 의회나 시민단체가 지원하는 지역 인권 추진기구가 잘 조직돼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또 인권도시 간 대외 교류 및 국제 연대에도 많은 관심을 갖는다. 공통 관심사인 인권에 대해 상호 학습하고 각 도시의 정책 정보를 공유한다는 점도 인권도시들의 공통점이다. 개별도시 차원을 넘어서 여러 도시들이 공동으로 시민의 인권보장을 다짐하기도 한다.

세계인권도시포럼을 개최한 바 있는 국내 대표적 인권도시인 광주 외에도 서울시가 ‘서울시민 인권선언’을 발표하는 등 적극적으로 인권도시 조성에 열중하고 있다. 국내 광역 자치단체 중 광주와 서울만 인권관련 과(課) 단위 부서를 설치해 운영하며 인권행정 전개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기초 자치단체 중에는 서울 성북구와 울산 동구, 부산 해운대구, 경기 광명시가 인권행정을 지향하는 대표주자로 손꼽힌다.
충청권의 인권 행정은 다소 미온적인 가운데 충남도가 가장 앞서 인권행정을 시도하고 있다. 과 단위는 아니지만 팀 단위의 인권 전담 부서가 설치 운영되고 있고, 충청권 지자체 가운데 가장 먼저 인권조례를 통과시켰다. 충남도는 강원도와 더불어 과 단위는 아니지만 광역지자체 중 팀 단위 인권 부서가 운영되고 있다. 대전시, 세종시, 충북도는 아직 인권 관련 부서가 설치되지 않은 채 공무원 한 명이 인권과 관련된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충청권 4개 광역자치단체는 충남도를 시작으로 모두 인권조례를 제정했지만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돼 있는 생태여서 주민들이 체감하는 인권행정이 전개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광역보다 주민들과의 스킨십이 긴밀한 기초지자체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 인권조례 제정조차 미루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인권관련 전담 부서를 개설하고 운영하는 일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청소년들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학생인권조례의 경우, 심각한 반대 여론이 형성되고 있어 제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험난할 전망이다.

근래 들어 인권에 대한 이해가 확대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오랜 세월 전체주의, 획일주의 의식과 군사문화에 영향을 받은 특수여건 때문에 대한민국의 인권의식은 더디게 확장되고 있다. 충청권 전 지자체가 모두 인권조례를 제정하고 인권행정을 주도할 전담 부서를 설치해 충청이 국내의 대표적 인권지역이 되길 바란다. 21세기 최대의 행정 과제는 인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충청이 선도하는 인권행정시대의 개막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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