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회 사회부장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 손놀림이 분주해지며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갑론을박도 덩달아 뜨겁다.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장년층의 고용안전과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게 당정의 지혜다. 임금피크제로 줄어드는 인건비를 청년 세대 신규 채용에 투자할 수 있다는 계산이 퍽 그럴싸하다. 속도전마저 불사하는 정부의 안간힘에 박수를 보내도 시원찮을 판에 들리는 평가는 야박한 편이다. ‘정년 연장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인데 환영보다 상앗대질하는 손가락이 많으니 참 민망한 일 아닌가.

노동계와 야권은 임금피크제 시행에 빗장을 거는 이유로 내년부터 적용되는 정년 연장이 이미 보장된 권리인 만큼 이를 조건으로 노조 동의 없이 도입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점과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더라도 인건비 절감이 크지 않아 청년 고용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임금을 줄여가며 연장된 정년조차 이러구러 뒷방 늙은이 취급에 눈칫밥 먹기 십상이어서 제대로 보장받을 수 없다는 불안심리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60세 정년 연장 의무 시행이 청년 고용 절벽을 높이는 만큼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정부 측의 주장과 절차상, 효과상 옥상옥 처지여서 물색없다는 노동계와 야권 측의 주장이 우리 사회 갈등의 씨앗인 ‘같은 정책 다른 해몽’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하다.

문외한의 시각에서 60세 정년 연장 의무 시행이 임금피크제를 전제로 합의 된 문제인지,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면 장년층의 고용안정을 꽤나 장담할 수 있는지, 줄인 임금으로 호언처럼 청년 고용을 늘릴 수 있는지, 정부 고용 정책 실패의 책임을 ‘윗돌 빼 밑돌 괴는’ 식으로 노동계에 전가한 것은 아닌지, 기업은 희생시킬 수 없다는 의지의 발로는 아닌지 다소 의아하긴 하다.

무엇보다 임금피크제 그늘에 웅크린 현실이 마뜩찮다. 그 대상들이 하필이면 이리치고 저리치어 골수 빠진 베이비부머 세대라는 점이 그렇고 취업빙하기에 갇혀 삼복더위 동사(凍死) 지경인 청춘들이 아버지의 삭감된 임금에 기대 맞갖잖은 기회를 잡는다는 켯속이 그렇다.

이마저도 정부 설계가 마침맞아야 가능한 가설이라는 게 꺼림칙하지만 세대 간 상생 고용의 범주에 들어가는 이들은 행복한 축에 낄 정도로 우리네 현실이 팍팍하다.

60세 정년은 그만두고 언제 보따리 쌀지 모르는 임금피크제 밖 가장들이 훨씬 많다. 아무리 걸터듬어도 제 밥그릇 찾기 힘겨운 임금피크제 밖 청년들이 훨씬 많다. 엊그제 청년 고용 대책이라고 내놓은 일자리 20만 개도 하질(下質) 논란에 처박히지 않았는가.

하루하루 마른침 삼키는 영세 자영업자는 또 얼마나 많은가. 벌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벌써 실직자가 돼 한 숨이 옹이 된 가장들이 수두룩하다.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군상들이 바라본 임금피크제는 어찌 보면 배부른 투정일지 모른다.

표를 잃어도 노동시장을 개혁한다는 집권 여당의 발상은 액면 그대로만 놓고 볼 때 나무랄 일이 아니다. ‘표를 잃어도’라는 결기의 진정성이 썩 와 닿지 않지만 말이다. 에멜무지로 요량이 아니라면 내놓는 정책마다 논란에 휘말려 여럿 헛심 쓰게 하지 말고 야무지게 추진하길 바란다. 우선 짧은 식견에 고용 시장 안정이 국민을 위한 일이라면 나라 곳간부터 열고 설득하는 게 도리라고 본다.

기업들은 희생시킬 수 없다는 고까운 인상을 심어주지 않는 것도 기술이다. 보다 총체적이고 보다 정밀한 정책의 수고가 아니고서는 자칫 계층 간 갈등만 양산할 뿐이다. 받아들이는 쪽도 마찬가지다. 야권도 정치다. 날선 입모양만 갖고 살아선 ‘도 긴 개 긴’이다. 대안 없는 비판만큼 아무 짝에 쓸모없는 일도 드물다. 속사정이야 모두 힘들겠지만 임금피크제 밖의 사람들, 나보다 더 힘겨운 이들이 겪는 고통 정도는 헤아릴 줄 알아야 홀아비 사정 알아주는 과부가 많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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