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호 내포취재본부장

이석호
<내포취재본부장>

야구처럼 선수 한사람의 역량에 승패가 좌지우지되는 스포츠도 드물다. 야구에서 투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달한다. 그래서 야구를 ‘투수놀음’이라 한다. 1회 초부터 등판하는 투수를 선발투수라 하고 선발투수를 제외한 나머지 투수를 불펜투수(구원투수)라 부른다. 불펜은 구원투수들이 등판하기 전에 몸을 푸는 곳이다. 불펜투수들은 감독의 지시에 따라 언제든지 마운드에 오를 수 있도록 항상 몸을 만들고 있어야 하기에 체력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최근 대권 도전과 도정 수행을 두고 언급한 ‘불펜투수’와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세간의 화제다. 안 지사는 얼마 전 중앙 언론과 잇따라 가진 인터뷰에서 대선 출마 계획을 밝히며 자신을 몸을 풀고 있는 불펜투수에 비유했다. 감독(국민)이 부르면 즉시 마운드에 오를 수 있도록 불펜에서 열심히 구질을 다듬고 있다고 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 발언은 지난 7월 말 가진 취임 5주년 기자회견장에서 나왔다.
 
대선 출마 준비로 인해 충남도정을 등한시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4500개의 도정 업무를 도지사가 다 챙길 수 없는 만큼 지휘자 역할을 통해 큰 그림을 그려 가겠다’고 답했다. 안 지사의 두 발언은 얼핏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기저에는 ‘도민’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불펜투수는 감독의 신임을 얻어야 마운드에 오를 수 있고 지휘자는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내야 박수갈채를 받는다. 믿을만한 투수인지,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냈는지에 대한 평가는 투수나 지휘자 본인이 아니라 감독이며 관객인 도민이 내린다.

안 지사가 대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것은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주지의 사실이다. 스스로를 ‘친노 폐족’이라 칭하면서 수 년 동안 와신상담 ‘용의 승천’을 준비해 온 그가 대권도전을 위한 몸 풀기에 들어간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아무리 불펜에서 몸 풀기에 들어갔다 할지라도 감독이 부르지 않으면 허사다. 감독은 결코 믿지 못하는 선수를 마운드에 세우지 않는다. 신뢰와 믿음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때가 됐으니 내보내 달라’며 보챈다고 해서 감독이 무작정 들어주지는 않는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음악의 표현 방식과 흐름 등을 전체적으로 조율해 최상의 선율을 만들어 낸다.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주자들의 통일된 곡 해석과 표현의 일치를 이끌어 낼 통할력을 지녀야 한다. 도정의 지휘자도 마찬가지다. 모든 도정을 도지사가 일일이 챙길 수는 없겠지만 중대 사안에 대해서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때로는 전면에 나서 진두지휘하는 것이 진정한 지휘자의 모습이다. 하지만 평택당진항 매립지 관할권 결정 문제나 안면도관광지 개발 사업 좌초, 황해경제자유구역 해제 등 굵직한 도정의 연이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은 지휘자로서의 역할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대선 출마 준비로 인해 도정이 등한시될 수 있음을 우려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도민의 입장에서 대권 도전과 도정 수행을 놓고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분명 도정이 먼저다. 도민들은 도지사 안희정에게 표를 던졌지 대통령 후보 안희정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팍팍한 삶을 조금이나마 덜어 달라는 염원을 외면한 채 ‘용의 승천’만을 꿈꾼다면 도민들의 마음은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음이다. 중국의 정치교과서 ‘정관정요’는 君舟人水(군주인수-군주는 배이고 백성은 물)라는 경구를 담고 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엎을 수도 있다. 물의 힘을 가벼이 여긴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안 지사의 대권 행보는 충남 도민들을 확고한 지지 세력으로 만드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안 지사의 대권 도전에 있어 고향 충남은 정치적 토양이고 뒷배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적 뒷배는 도정 지휘자로서의 믿음과 신뢰를 심어주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향에서조차 신뢰받지 못하면서 낯선 타향민들의 마음을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제가(齊家)없이 평천하(平天下)를 도모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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