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호 내포 취재본부장

얼마 전 오랫동안 친분을 이어온 선배 한 분을 만났다. 기업체 임원으로 재직했던 선배는 지금은 퇴직해 등산이나 지인들을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는 소일거리로 날을 보내고 있다. 몇 달 만의 만남인지라 술자리가 이어졌고 취기가 오른 선배의 입에서는 한탄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올해 추석은 마누라하고 둘이 보내야 될 것 같아. 애들이 아무도 집에 오지 않는다는 구먼. 졸업한지 몇 년이 지나도록 취직을 하지 못하고 저렇게 놀고 있으니 명절이라고 집에 오고 싶겠어? 집에 와야 친척들한테 달갑지 않은 인사를 계속 받아야 하니 가시방석이겠지. 이제는 애들 뒷바라지하기도 힘겨워지는데….”

선배의 두 아들은 서울에서 이름 있는 대학을 졸업했다. 큰 아들은 대학을 졸업한 지 4년이 되도록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고 작은 아들은 지난해 대학을 마치고 2년째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여러 기업체를 찾아다니면서 바늘구멍 같은 취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 허사였단다. 두 아들은 계속되는 취업 낙방과 백수 생활에 상실감과 두려움이 커져 취업 의욕마저도 점차 잃어가고 있다며 선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의 두 아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100만명을 넘고 있다. 한 연구기관은 우리나라 청년실업자가 대략 115만 명에 이르러 ‘청년실업자 100만 명 시대’에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통계청이 최근 공식발표한 우리나라 청년 실업률은 10% 수준이지만 이 연구기관이 분석한 체감실업률은 이보다 두 배가 넘는 23%대로 집계했다. 경제 활동에 참여해야 할 청년 4명 중 1명이 집에서 놀고 있는 백수라는 것이다.

더욱이 ‘청년 백수’ 상당수는 대졸이상의 고등실업자이어서 경제적, 사회적 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수천만 원의 비용을 들여 마친 대학 교육은 경제활동에 활용되지 못하고 사장돼 엄청난 재원만 허투루 쓰인 셈이며 성인이 되었어도 부모에게 의지하는 박약한 모습의 ‘모라토리엄 인간’도 양산시키고 있다. 취업문을 두드리다 지쳐 일할 생각조차 버린 ‘니트(NEET)족’이 50만 명에 육박한다는 통계는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대변한다.

취업을 위해 얼굴이나 신체부위를 고치는 ‘취업 성형’이 성행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이제는 취업을 위해 성공선 손금을 성형하는 ‘웃픈’ 일도 벌어지고 있다. 오죽했으면 손금을 고쳐서라도 취업할 생각을 할까마는 이런 몸부림이라도 해야 하는 현실이 가슴을 저민다. 최근에는 취업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는 청년들도 속출하고 있으니 가히 ‘취업은 로또’라는 말이 수긍이 간다.
 
청년실업이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고는 하나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정부정책도 ‘청년 고용절벽’을 만드는데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국내 대기업들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앞 다퉈 인력채용을 늘리겠다며 선심(?)을 쓰고 나섰지만 되레 안이한 정부정책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키우고 있어 답답할 노릇이다.

일주일 후면 한가위다.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고 이웃과 함께 풍요를 나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절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처럼 한가위는 풍요의 상징이다. 온누리를 환하게 비추는 보름달 아래 오순도순 모여 앉아 송편을 빚으면서 가족 간의 사랑을 나누는 것은 풍성한 식탁과 더불어 한가위가 던져주는 또 다른 의미이다. 힘들고 피곤한 귀성 여정을 마다하지 않는 연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청년들은 한가위가 달갑지 않다. 오랜 백수 생활에 지친 청년들에게는 명절이 부담스럽고 외면하고 싶은 심정이다. 올해도 많은 청년들이 낯선 타지에서 쓸쓸히 명절을 보낼 것을 생각하니 푸른 하늘에 큰 구멍을 뚫어 놓은 것 같은 둥근 보름달만큼이나 마음이 시리다.
이석호<내포취재본부장>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