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저격수' 하태경·박영선·안민석… "전경련 해체"·"정경유착 고리 끊어라" 이끌어내

 "재벌도 공범이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상대로 한 질문과정에서 제시한 촛불집회 손팻말의 글귀이다.

6일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특위가 8대 대기업 그룹 총수들을 출석시킨 가운데 개최한 청문회는 대한민국 재벌에 대한 '촛불민심'의 성토장이나 다름없었다.

여야를 막론한 국조특위 의원들은 재벌 총수 한명 한명을 향해 '최순실 게이트' 관련 의혹을 매섭게 몰아붙이면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지난 주말 역대 최대규모를 기록한 촛불집회가 청문회의 전체적 분위기를 지배한 듯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증언대에 선 총수들은 곤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재벌도 이번 최순실 사태의 공범"이라는 지적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특히 국내 간판재벌인 삼성이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에 대한 특혜지원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정 의혹 등으로 인해 집중 도마 위에 올랐고, 국회의원들 질문의 90%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쏠리면서 '이재용 청문회'를 방불케 하는 현상이 연출됐다.

◇ 굴지의 재벌총수들 증언대에…5共청문회 이래 28년만의 진풍경 = 이날 청문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최태원 SK그룹 회장·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구본무 LG그룹 회장·손경식 CJ그룹 회장·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8대 대기업 총수가 한자리에 모였다.

국내 굴지의 재벌총수들이 이처럼 공개적으로 국회 청문회 증언에 나선 것은 1988년 5공 청문회 이래 28년 만에 벌어진 진풍경이다.

특히 5공 청문회 때 출석했던 총수들의 자제는 이 부회장(이건희 전 회장의 아들), 정 회장(정주영 전 회장의 아들), 구 회장(구자경 전 회장의 아들), 최 회장(최종현 전 회장의 아들), 조 회장(조중훈 전 회장의 아들), 신 회장(신격호 전 회장의 아들) 등 6명에 달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이 같은 현상을 '정경유착 고리의 세습'이라고 지칭하면서 "오늘 이 자리는 단순히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자리가 돼서는 안된다"면서 "5천만 국민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희망이 나올 수 있느냐, 구시대의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느냐는 마음으로 TV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 '청문회 스타'들 등장…하태경, '전경련 해체' 이끌어내 = 청문회 질의가 본격 시작되자 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날카로운 질문으로 대기업 총수들을 압박했다.

특히 이날 이재용 부회장으로부터 전경련 해체 답변을 끌어낸 건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었다.

이미 오전에 이 부회장에게서 "전경련 활동을 하지 않겠다. 기부금을 내지 않겠다"는 답변을 들었던 하 의원은 오후에 다시 "삼성이 전경련을 탈퇴하고, 전경련을 해체하고, 새로운 싱크탱크를 만드는 데 지원하겠다고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이 부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 입장에서 해체를 꺼낼 자격은 없지만 탈퇴하겠다"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과 구본무 회장도 하 의원이 연이어 전경련 탈퇴 의사에 동의하느냐고 묻자 "네"라고 답했다.

전날 박 대통령이 태반주사·백옥주사·감초주사를 맞은 사실을 증인으로부터 이끌어낸 새누리당 장제원 의원은 이날 "한화그룹이 8억3천만원짜리 네덜란드산 말 두 필을 구입해 최순실 씨의 딸인 정유라에게 상납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 '삼성 저격수'로 나선 박영선·안민석 "정경유착 고리 끊어라" = 더불어민주당 박영선·안민석 의원은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주도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특히 재벌 개혁의 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는 박영선 의원은 이 부회장으로부터 "저보다 훌륭한 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경영권을 넘기겠다"는 발언을 끌어냈다.

박 의원은 "국민 질문이고, 문자가 들어왔다"면서 "이 부회장은 모르는 게 많고 기억력이 안 좋은 것 같다. 더 기억력이 좋고 아는 게 많은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겨야 하지 않나"라고 문자를 읽자 이 부회장이 이같이 답한 것.

또 이 부회장에게 "8조원의 재산을 만드는 동안 불법·편법·법정 시비가 있었고, 헐값매각·편법인수·편법증여를 해왔다"고 말했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도 매서운 지적으로 총수들을 압박해 눈길을 끌었다.

가령 이 부회장에 대해서는 질문의 취지와 안 맞는 답변이 나올 땐 "동문서답하지 말라"고 지적했고, 답변이 늦어질 때는 "머리 굴리지 말라"고 말했다.

검찰 조사 중이라 답하기 곤란하다는 답변엔 이 부회장의 나이를 물은 뒤 "불리하면 동문서답, 이제는 검찰 핑계냐. 아직 50(세)도 안 된 분이 국민을 조롱하는 듯한, 국민을 놀리는 듯한 발언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전경련 해체에 반대하는 분들 손을 들어달라"며 8명의 대기업 총수들에게 거수투표를 시켰고, 이에 신동빈·구본무·김승연·정몽구·조양호 회장 등 5명이 주춤거리다 손을 들기도 했다.

안 의원은 '박근혜는 퇴진하라', '재벌도 공범이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대기업 총수들에게 보여주며 "국민이 외치는 '재벌도 공범'이라는 말에 동의하느냐"고 몰아세웠다. 이에 이 부회장은 "국민의 여론을 아주 준엄하게 받아들여 반성한다"며 머리를 숙였다.

안 의원은 그러면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것을 약속하느냐'고 추궁했고 이에 이 부회장은 "참 경솔했던 일이 많았다"며 "앞으로는 어떤 압력이든 강요든 제가 철저히 좋은 회사의 모습을 만들도록 정말 성심성의껏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어 "국민들에게 절대 다시는 국민들 실망시켜드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자 안 의원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도 '정경유착 고리를 확실히 끊을 수 있느냐'고 물었고, 이에 최 회장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 질문의 90%가 삼성…'이재용 청문회' 방불 = 이번 청문회의 초점은 단연 삼성에 맞춰졌다. 삼성이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에 대한 특혜지원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정 의혹 등으로 인해 집중 도마 위에 올랐고, 국회의원들 질문의 90%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쏠리면서 '이재용 청문회'를 방불케 하는 현상이 연출됐다.

70세가 넘은 고령의 총수들은 저녁이 되자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조기 귀가했다. 오후 8시40분께 청문회가 속개된 뒤 김성태 특위 위원장의 제안에 따라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집으로 돌아갔고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병원진료 등을 이유로 귀가했다.

이날 의원과 총수 간 질의·응답 과정에서 방청객의 실소를 자아내는 해프닝도 눈에 띄었다.

민주당 안 의원은 "여기 계신 증인 중에서 촛불집회에 나가본 적이 있다면 손을 들어보라"고 물었고, 이에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손을 들자 "당신은 재벌이 아니잖아요"라고 말해 좌중에 폭소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새누리당 하 의원이 신동빈 회장에게 K스포츠 재단 관련 압수수색을 받기 전에 정보를 미리 얻었는지를 묻자 신 회장은 "전혀 몰랐다"고 답했고, 이에 하 의원이 "롯데 정보망이 허술하다"고 꼬집자 신 회장이 "그런 것 같다"고 말해 방청객에서 웃음이 터졌다.

정몽구 회장은 이날 청문회가 정회하자 의원석 쪽으로 다가가 악수를 청했고 정의당 윤소하 의원에게는 "나도 나이 꽤나 먹은 사람이야"라고 했고, 청문회장 밖으로 나가면서 "바쁜 사람이 여기 와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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